
팔상성도八相成道라 했는데 가장 처음에 나오는 모습이 뭐지요?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도솔천에서 내려오시는 모습...
두 번째는 뭐지요?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룸비니에서 탄생하시는 모습...
세 번째는 뭐지요?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네 문을 돌아다니면서 인생의 여러 모습을 관찰하셨다.
네 번째는 뭐지요?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성을 넘어서 출가하시는 모습이지요.
이때가 연세가 얼마지요?
29세
다섯 번째는 뭐지요?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제가 보기에는 이 설산은 전정각산이 아닌가?
고행림이 있었던 그 산이 아닌가?
이것은 제 생각입니다.
여섯 번째는 뭐지요?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수하라...나무 수樹자입니다.
보리수나무 아래서 항마, 마구니를 항복받으시는 모습...
일곱 번째는 뭐지요?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녹야원에서 법을 최초로 법을 굴리시던 모습...
전자가 구를 전轉자입니다. 그래서 녹원전법상이라...
여덟 번째는 뭐지요?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사라수라고 하는 두 그루 나무사이에서 열반에 드시는 모습이다 그랬어요.
예. 아주 교리를 잘 아시는 분들도 있네요.
아무튼 마구니를 항복받았다.
마왕 파순...이름으로 말하면 파순이라고 하는 마왕이에요.
자기 혼자서 안 되니까 나중에 마왕의 딸이 있었나 봐요.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 그 앞에 얼쩡거리게 해요.
딸이 하필이면 세 명이요. 세 명...
그것이 다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데 실제로 그런 사건이 있었을 수도 있고 언제나
우리는 내용적인 것 까지도 같이 보셔야 돼요.
이것도 책에는 잘 안 나오는데 제가 봤을 때는 탐진치貪瞋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 아닌가 생각이 돼요.
한 번 따라해 보세요.
탐진치
탐진치
탐심이라 하면 과도한 욕심이잖아요.
진심이라 하면 분노심, 성낼 진瞋자
치라는 것은 어리석음
그래서 탐진치라고 하는 인간의 욕심이 이성에 대한 욕심이상으로 크다는 거지요.
딸 세 명을 내려 보내서 부처님 앞에서 교태를 부리게 하고 했지만 부처님께서는 그냥 내버려 두었어요.
묵빈대처했어요.
그들이 지쳐 돌아갔어요.
드디어 부처님께서 그 금강보좌에 앉으신지 7일이 되었어요. 7일...
동북방지방에서는 12월 8일로 보는데 그것은 비슷한 것 같아요.
그 쪽에 가면 성도재일을 하지요.
성도를 하신 날이 납월 8일, 12월 8일이라 그러잖아요.
그래서 태어나신 것이 사월 초팔일이지요.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날은 12월 초팔일이지요.
부처님께서 육신으로 태어나신 것은 사월 초파일이고 부처님께서 정신적으로 크게
한 번 더 태어나신 것은 12월 8일, 납월 8일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깨달은 날이 더 중요하다 그러는데 제가 보기에는 태어나신 날도 그만큼 중요하지
않는가 생각이 돼요.
같이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가 4대재일이니 5대재일이니 하지만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날, 부처님께서 부처님 되신 날
성도재일 이 두 개의 재일이 제일 크고 중요한 것 같습니다.
6년 세월이 지났습니다.
섣달을 12월이라 하는데 드디어 섣달 8일 새벽 샛별을 보고 깨달았다
했거든요. 샛별은 언제나 있는데 누구든지 다 깨닫지 부처님만 샛별을 보고 깨닫는가?
이런 생각도 할 수 있어요.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봤어요.
부처님께서는 샛별을 보고 깨달았다는데 왜 일반 중생은 못 깨달을까?
그 생각을 하면서 제가 젊은 학생시절에 뉴튼이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만유인력을 발견했다는데 사과나무에서 사과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데
사과 떨어지는 것을 만유인력을 발견했다 하잖아요.
아마 그런 것쯤 되지 않을까 생각이 돼요.
사과나무에서 사과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런데 위대한 현자나 위대한 철학자나 위대한 과학자는 그런 것을 보고 깨닫는다.
그래요. 참 희안한 일이지요.
부력을 발견한 사람이 누구지요.
‘아르키메데스‘라는 사람이지요.
그 사람이 목욕탕에 들어갔더니 물이 넘치는 거요.
그럼 몸이 뜨지요.
그걸 보고 부력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목욕탕에 들어가면 물이 넘치고 몸이 뜨는 것은 당연한
것을 이렇게 생각하지요.
저는 최근에 의심이 되는 것이 커피가 카페인이 없는 커피가 나온다는데 도대체 커피 주성분이
카페인을 어떻게 없앨까?
어떻게 그것이 제품이 되어서 나올까?
그것이 제가 숙제입니다.
혹시 거기에 대해서 아는 분이 있으면 좀 가르쳐 주면 좋겠고...
샛별을 보고 부처님이 깨달았다. 샛별을 보고...
또 어떤 사람은 또 생각을 하지요.
부처님께서 깨달을 때 샛별이 있었겠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렇지만 저는 부처님께서 화두 아닌 화두를 들고 계시다가 샛별을 보는 순간 깨닫지 않았을까?
사과나무에서 사과 떨어지는 것을 보고 뉴튼이 만유인력을 생각했듯이 부처님께서는 틀림없이 샛별을 보고 깨친바가 있었을 것이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개인적으로...
일주일 만에 깨달았어요. 일주일...
일주일 만에 깨달았다고 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일주일만 하면 되겠네.
그러는데 그 앞의 세월 6년이 없었다면 부처님이 어떻게 일주일 만에 깨달았겠는가?
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샛별이 뜰 그 때는 동트기 직전이거든요.
그 때 새벽이 가장 어둡다고 하잖아요.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룰 때도 동트기 전 새벽이 어두운 것처럼 깜깜하고 그런 시기를 잘 지나가야지
크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애들이 성장하는 것도 사업이 되는 것도 다시 살아나는 것도 그래요.
온갖 마구니들이 설쳐대는 그 시간들이 지나갔거든.
그것이 깜깜한 시간 아닙니까?
또 하나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부처님께서는 어떤 수행으로서 깨달음을 이루셨을까?
당시에 많은 수행이 있었는데 지금도 다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 수행이란 뭡니까?
부정관...
해골보고 하는 부정관不淨觀...
옛날에도 있었어요. 백골관白骨觀...
옛날에 부처님 당시부터 있었던 수행이 위빠사나수행, 관수행, 호흡관이 되었든지
수식관이 되었든지 그런 관법의 수행은 옛날부터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일대기를 보더라도...
부처님께서는 이 고행림에 들어오시기 전 단계에서 어디까지 깨달음을 이루셨을까?
한꺼번에 확 열리면 끝인가?
거기에 대해서 많은 논쟁이 있는데 전통 경전의 입각에서 우리가 보면 이 깨달음도 차츰차츰
깨달아진다는 겁니다.
돈 버는 것도 차츰차츰 버는 것이 정상이잖아요.
부처님의 깨달음을 화엄경에서는 이렇게 봅니다.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 등각, 묘각
50단계 다음에 거의 깨달음에 접근한 등각의 단계가 있고 묘각의 단계가 있어요. 묘각...
묘각의 자리가 부처님자리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분명히 단언하건데 부처님께서는 거의 턱 밑에 갔지만 속시원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 단계를 올라선 곳이 보리수 아래 금강보좌였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 하면...
우리가 삼매가운데서 보면 완전히 대각의 바로 아래 단계가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相處定이라는
것이 있어요.
그 아래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이라는 것이 있어요.
부처님께서는 어떤 단계를 거치셨나?
알라라 칼라마라고 하는 수행자로부터 무소유처정에 도달했어요.
그 다음에 웃다카 라마풋다로부터 바로 비상비비상처정에 도달했어요.
그 바로 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대각의 단계거든요.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어느 일정수준 이상의 삼매의 깨달음은 이루셨다는 겁니다.
52단계 가운데서 제가 봤을 때는 분명히 십회향, 십지단계까지는 올라서셨는데 두 단계가
미진해서 아마 마지막 고행을 하지 않으셨나 생각이 돼요.
이것이 끓는 물로 말한다면 비등점이 있는데 10도, 20도, 30도, 40도, 50도, 60, 70도가 되면
제법 뜨겁기 시작해요. 80도 뜨거워. 90도 뜨거워.
91도, 92도, 93도,...99도가 되어도 끓지는 않아요.
한 번 생각을 해봐 봐요.
물 끓는 것을 생각해봐요.
100도가 되어야 끓는 겁니다. 100도가 되어야 끓는다니까...
부처님께서는 100도, 그 비등점을 넘어서기 위해서 마지막 수행을 보리수 아래서 7일이 필요했어요. 7일...
물론 그 전 단계에서 고행림에서 많은 과정을 거치셨겠지만 그 1도, 99도에서 100도, 비등점
올라가는데 일주일을 밀어 부친거지요.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70도쯤 되면 포기해버려요.
세상의 일을 성취하는데도 그래요.
80도쯤 되어 가지고 포기해요.
90도쯤 되어서도 해도 안 된다고 포기하지요.
그래서 범부와 성인의 차이가 저는 거기에 있지 않는가 생각이 돼요.
우리는 지금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잘 모르잖아요.
그럼 언제까지 해야 되느냐?
일이라는 것은 부처님께서는 대각을 이루실 때까지 성불하실 때까지 한 것이거든요.
“스님, 언제까지 하면 됩니까.”
일이 될 때까지 하면 돼요.^^
다른 것 생각하면 안 돼요.
일이 될 때 까지 밀어붙여 보는 거요.
일이 되어야지 비등점에 올라서는 거니까.
저는 석가모니부처님을 늘 생각하면서 석가모니부처님은 법신, 보신, 화신이라고 말할 때 어디에
해당하는 부처님이요?
화신이지요.
우리 중생을 깨우치기 위해서 중생의 몸을 닮아서 오신 분이 화신의 부처님이지요.
변화의 몸 부처님이지요.
석가모니부처님은 현재 우리 인간, 지구에 있는 인간 중생들을 위해서 오신 부처님, 즉 우리 인간들의
롤 모델로 오신 분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이 하시는 데로 하는 것이 제일 좋아.
석가모니부처님이 목숨을 내놓고 될 때까지 밀어붙여 본거거든요.
우리가 세속에 살면서도 그런 일이 얼마나 많으냐는 거지요.
안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어떤 목표가 정해지면 죽기 아니면 살기로 부처님께서 성불하시는
그런 흉내를 내가면서 끝까지 밀어붙여 보면 일이 된다는 거지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우리의 롤 모델이 되신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부처님께서는 드디어 큰일을 이루셨는데 큰일을 이루시는 그 순간, 그리고 마지막 일주일 그 기간,
그것이 있었던 당시의 일반적 수행하고는 달랐다.
저는 거기에 대한 확신을 합니다.
일반적 수행하고는 달랐을 것이다.
관수행으로 또는 사마타수행, 몰입수행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지요.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다른 사람은 이런 얘기를 하지 않는데 제가 확신하는 바가 있어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분명히 부처님께서는 관수행, 수식관이든지 호흡관이든지 관수행으로도 그 비등점에 올라서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방향을 돌이켜서 자기자신을 버렸을 거라. 자기자신을...
이스라엘스님, 법일스님 있지요.
마당에 있는 나무가 냄새를 맡아보니까 측백나무라.
법일스님한테 내가 며칠 전에 측백나무 밑에서 무슨 얘기 끝에 물어 봤어요.
“우리가 수행을 왜 하는가? 그리고 부처님께서 뭘 깨달았을까?“
한 번 얘기 해봐요. 무엇을 깨달았을까?
법일스님이 제 정서하고 비슷한지 제가 요구하는 답을 바로 말했어요.
“스님, 아마 참 나를 깨달았을 겁니다.”그래요.
참 나... 참 나를 깨달았다.
내가 무엇인가?
내가 관수행을 하면서도 관수행을 하는 이놈이 도대체 뭔가?
Who am I?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What is This?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지금 내가 어떤 관을 하고 있는데 관하고 있는 이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제가 확신을 가지고 늘 주장하는 선관쌍수입니다.
관하면서 관하는 그 주인공을 다시 보는 거요.
법일스님이 왜 그런 확신을 갖는가?
자기 자신도 그런 생각을 한데요.
관으로는 깨치지 못한다는 거야.
이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한문으로는 뭐라고 하지요?
‘시심마’ 또는 ‘시삼마’
이 뭣고?
이 화두가 후일에 생긴 것처럼 얘기하지만 저는 이 얘기가 부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저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제가 한 번도 보지를 못했지만 저는 이렇게 수행을 하면서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나는 무엇인가?’
호흡관을 하고 많은 관법을 수행하시면서 마지막 일주일에 앉으셨던 그 내용은 분명히 다른 수행이었다.
다른 수행은 무엇이냐?
참 나를 찾아가는 수행이다.
진정한 나의 주인공은 무엇인가?
무엇이 현재 나를 이토록 애태우고 있는가?
무엇이 현재 관하고 있는 진정한 주인공은 무엇인가?
무엇이 관하고 있는가?
거기에서 탐진치 삼독의 구름이 벗겨지고 찬란한 자기 불성광명이 드러나지 않았는가?
제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저는 성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이 부분인데 이 부분은 우리가 깊이깊이 생각해봐야 돼요.
관세음보살님을 외우면서도 관세음보살님을 외우고 있는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이 관세음보살님을 외우고 있는가?
도대체 진정한 나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이 생각을 늘 같이 해야 됩니다. 깊이 있게...
진정한 화두가 되려면 그렇게 해야 된다.
진정한 마음공부가 되려면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우뚝 탑을 세웠는데 그 탑이 바로 마하보디대탑입니다.
52미터 탑입니다.
층수로는 9층인데 9층의 방추형, 피라미드형의 탑이고 2002년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탑입니다.
인도 북동부 ‘비하르’주라고 하는 성지입니다.
BC3세기 아쇼카왕이 최초로 탑을 작은 것을 세웠는데 5,6세기경 구타왕조시대에 현재의
모습으로 갖추었다고 했어요.
이 탑이 전탑이라 해서 벽돌형식으로 쌓아 올렸는데 가보면 대단합니다.
탑 위의 꼭대기를 탑상존부라 그렇게 말하는데 상존부가 지금은 파랗게
보이는데 요즘 가보면 금으로 다시 도금을 해가지고 청동이 아니라 금칠이 되어서 올라져 있습니다.
성지도 갈 때 마다 변합니다.
한 번 가서는 다 못봅니다.
저번에 말씀드렸듯이 12번도 수자타 탑인데 이것도 제가 몇 차례 가면서 보지 못했다가 최근에
가면서 발견을 했지요.
이른 새벽에 태양 빛이 비출 때 찍은 사진인데 이 성도재일 가까이 가면 사람이 많아서 지금은
사람이 거의 없지요.
성도재일을 벗어나서 가야지 한산한 탑을 참배할 수 있습니다.
이 탑이 52미터인데 이것도 책에 있지 않지만 제가 생각하건데 52계위,깨달음의 52계위라고 말해요.
52단계 때에 부처님 깨달음을 이루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굳이 52미터로 세우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또 하나 말씀드리면 우리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옥상에 세워진 미륵부처님, 그 부처님도 52척입니다.
규모는 좀 작지만 미륵부처님인데 52척, 15미터쯤 됩니다.
그래서 탑을 세울 때는 언제나 의미를 부여합니다.
부처님을 세울 때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것을 봤을 때 분명히 이 탑을 완성할 때는 52척, 52미터, 즉 52계위, 마지막 부처님 52단계에서
깨달음을 이루신 그것을 나타내려고 애를 썼을것이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탑이 이렇게 있다가 12세기 중엽에 이슬람 사람들이 침입해오면서 이 탑이 완전히 훼손 될 수 있는
그런 위기에 처합니다.
52미터 탑을 그 때 불교신자들이 다 덮어버렸어요.
산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그 주위에 있는 모든 절들이 폐허가 되었어요.
이슬람 사람들, 신을 믿는 사람들이 조금 극단적이거든...
이슬람사람들이 너무 극단적으로 그러니까 불자들은 싸우기를 싫어하지요.
그래서 모두 그 탑을 덮고 말았어. 큰 동산이 하나 되고 말았어.
이것이 언제 발견되었느냐?
19세기후반 ‘커닝 햄’이라는 사람이 이 탑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 때 다 파헤쳤던 거지요.
대단한 탑이 하나 나타난 거지요.
그 뒤로 미얀마사람들이 잘 살 때(지금은 못사는 것 같아도 옛날에는 잘 살았던 모양입니다.)
보수를 했고 오랫동안 힌두교인들이 관리를 하다가 나중에 힌두교, 불교인들이 같이 관리를
하다가 지금은 불교인들이 전적으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무지 중요한 시간인데 시간이 다 되었답니다.
부처님께서는 참 나를 깨달으시고 49일을 법열. 법락을 누리시게 되는데 그 내용이 아주 기가 찹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후일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지면 공부에 빠지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공부는 추우나 더우나 언제나
그 마음이 한결같으셔야 됩니다.
공부 열심히 나오시고 기도하는 날이면 기도 열심히 나오시고 또 힘이 되면 봉사도 열심히 좀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늘 공부하고 기도하고 봉사하고 포교하는 그런 엘리트불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초하루기도에 오신 공덕으로 늘 가정이 편안하시고 하시는 일들이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초하루 법문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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