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멸문은 중생의 문입니다. 중생의 짓을 많이 하다 보면 생멸의 문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것이 고통의 문이 되는 것입니다. 짐승이라는 말은 음운학적으로 중생에서 즘생으로, 다시 짐승이 되는 변천과정을 거칩니다. 짐승이라는 말은 결국 중생에서 온 말입니다. 중생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려면 짐승의 모습을 보면 됩니다. 중생의 모습을 짐승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비근한 예로 우리절(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하늘법당에 큰 토끼 두 마리가 있었는데 두 마리 다 암토끼였습니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꼬물꼬물 거리는 토끼 새끼를 키우게 해주려고 수토끼 두 마리를 사 와서 넣어주기로 했어요. 그런데 수토끼인 줄 알고 사 온 토끼 중 한 마리가 암놈인 겁니다. 그러니까 원래 있던 암놈 두 마리에, 새로 온 암놈 한 마리까지 합쳐서 암놈은 모두 세 마리가 되고 수놈은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같이 살도록 토끼 집에 넣어주면서 ‘분명히 암놈 중 한 놈은 탈이 나도 나겠다. ’라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에 가보니 그 중 한 마리가 영 형편없이 되어 있는 겁니다. 혹시 토끼 껍데기 벗기는 거 보셨습니까? 말 그대로 토끼 껍데기 벗기듯이 목 줄기가 다 물어뜯겨 벗겨져 있었어요. 그래서 격리시키고 토끼를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짐승이구나! 참으로 중생이구나!’ 사람이라도 함부로 말하고 시기 질투하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생멸의 문은 중생의 문으로, 중생이 짐승과 같은 짓을 하면 끊임없이 고통의 문, 고통의 길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진여의 문으로의 전환 우리 불자들은 적어도 이런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서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고통 없이 살 수 있으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귀도 문, 눈도 문, 입도 문인 이 세 개의 생멸문을 늘 조심하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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