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조단경 無一우학스님 강의. 불교TV 방영 제이. 반야품(第二 般若品) 제12강-23 고지본성(故知本性)에 자유반야지지(自有般若之智)니 자용지혜(自用智慧)하야 상관조고(常觀照故)로 불가문자(不假文字)니라 비여우수(譬如雨水)가 부종천유(不從天有)라 원시용능흥치(元是龍能興致)하야 영일체중생(令一切衆生)과 일체초목(一切草木)으로 유정무정(有情無情)이 실개몽윤(悉皆蒙潤)하고 백천중류(百川衆流)가 각입대해(却入大해)에 합위일체(合爲一體)인달하야 중생본성(衆生本性)의 반야지지(般若之智)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니라
그러므로 본성에는 원래 반야의 지혜가 있으며 스스로 지혜를 써서 항상 관조하므로 문자를 빌리지 않는 것임을 아느니라. 비유하건대 비와 물이 하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원래 용이 일으켜서 일체중생과 일체초목과 유정과 무정들을 모두 다 윤택하게 하고,백가지의 강으로 흐르다가 마침내는 큰 바다에 들어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과 같이 중생의 본성인 반야의 지혜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그리고 또 두 번째, 스님 중에서 보면 복지 하는 스님들 있습니다. 복지 또는 복지 자체가 수행이거니와, 복지는 어찌보면 모든 대승보살의 꽃이 복지입니다. 그런데 복지하는 스님들 두고 또 어떤 스님들은 ‘출가자가 어떻게 재가자의 밥그릇을 뺏느냐? 출가자가 하지 않으면 재가자 중에서 그런 일을 할 테고, 재가 신도중에서 그걸로 인해서 밥을 먹는 그런 일이 되지 않느냐?’ 이거지요. 그런데 그것도 재가자는 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고 하면, 물론 뜻이 있는 사람은 전 재산을 털어서 그런 복지 활동을 하는 분도 있겠지마는, 살림이 크지 않는 경우에는 자기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인데 어떻게 그 큰 규모, 수십억 수백억 규모의 복지 활동을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거지요. 그렇다면 그거는 절에서 스님이 어떤 종교 행위로써 신도들로부터 협조를 얻어서 복지활동을 한다면 그게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런데 그걸 두고 어떤 사람이 또 말하기를, 스님이 출가해서 수행이나 할 일이지 뭣하러 재가자들이 할 수 있는 복지나 하느냐고, 또 그렇게 비판합니다. 그것 또한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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