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찾아 천리? 지금 내가 사는 곳이 고향 입니다
2013.09.20 | 이민국 새오름포럼사무국장

오랫동안 기승을 부리던 한여름의 무더위도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에 밀려 숨을 죽이고, 지난 여름 온 국민들의 절전 동참으로 위기를 무사히 넘긴 것에 감사한다는 (주)한국전력의 현수막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그러더니 이제는 전국 각지에서 벌초하다 벌에 쏘여서 많은 사람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등의 뉴스를 연일 보게 된다.
필자 또한 고향에 조상님들의 산소가 여러 곳에 있어서 매년 이 맘 때면 온 가족이 전쟁을 치르듯 벌초가 하나의 행사로 이어져 오고 있다.
금년에도 지난 9월 첫 주일에 우리 온 식구들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한가위 때 하게 될 성묘에 벌초를 하려는 생각으로 몇 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벌초하기 하루 전 고향 충주의 친척집으로 내려갔다. 아침 일찍부터 몇 곳을 다니면서 가는곳 마다 말벌집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심정으로 미리 살충제를 뿌려서 벌집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벌초를 하는 세심한 행동을 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들이 매년 이맘때 벌초를 하기 위하여 아침 일찍부터 서두르는 이유는 조상님들의 산소가 많아서라기 보다는 여러 곳에 산재해 있는 산소들이 서로 거리를 멀리하는 심지어 몇 백리씩 떨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충주와 장호원 그리고 안성천주교 추모공원 등에 안장되어 계신데 장정 몇 명이서 부지런히 해야 하루에 끝마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가족들은 산재해 있는 산소들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보자고 불평들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렇지만 필자의 논리로 설득을 하게 되는데 내가 낳아서 자란 잔뼈가 굵은 곳에 대한 그리움, 동경심 등은 나이가 들어서도 어머니의 품속을 그리워하듯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언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를 구경 할 수 있으며 언제 내가 옛날에 함께 개울가에서 멱감던 친구를 만나볼 수 있겠느냐며 말도 못 꺼내게 한다. 이런 나의 억지논리가 앞으로 얼마나 더 먹혀들지는 나도 모를 만큼 자신이 없는 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라도 해서 나의 고향과 우리 아이들의 고향을 지켜보고 싶은 것이다. 몇 일전 시흥에서 애향인 초청대회가 올해로 세 번째 있었다. 초청대회에 참여하는 분들도 매년 해를 거듭 할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대회를 치르고 돌아가실 때마다 내년에도 또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씀들을 하신다.
▲ 뱃노래를 부르며 입장하는 신현동 어형선 퍼레이드. © 이민선 | | 특히나 금년에는 시흥의 자랑이며 시흥에서 제일 크게 치르는 갯골축제에 애향인들이 맨 앞에서 어형선을 끌고 입장하는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함께 참여한 애향인들은 예전에 갯골에서 고기 잡아먹고 뗏목 만들어 타고 놀던곳 이라며 너무들 좋아하셨다. 그런 말과 행동에 뒤돌아 생각해 보게 된다. '고향 내가 돌아갈 곳이 아니다, 더러는 금의 환향'이라는 거창한 이야기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옛날을 회상하며 그때의 기억들을 떠올려 지금의 나를 보게 되는 지금 자신의 위치를 재발견하는 그러한 곳이 고향이 아닐까 한다. 마치도 어머니의 품속을 그리워하지만 돌아 갈수 없는곳 바로 그런 곳이 고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움과 동경의 대상이고 옛날을 떠올려 지금 자신의 도약을 위한 자아를 찾는 곳이 고향이라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을 그러한 곳으로 만들고 느끼며 책임과 의무를 심어준다면 지금 자신의 모습과 삶에 커다란 활력소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의 삶의 장소에서 조금만 힘들거나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거나 채우기 위해 하는 말들이 이사 가야 겠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 우리아이들도 손녀들이 취학시기가 되면 이사를 가야 한다고 지금부터 우리부부에게 주문을 한다.
그렇지만 나는 단호하게 잘라 말한다. "수십 년 전에 살기 어려워 고향을 떠나 이곳 시흥에 정착을 하였고 너희들이 잘 자라주어서 좋은 직장과 사업을 하고 있으며 한때나마 아빠가 시흥시민들이 내어주는 세금으로 우리가정에 보탬이 되었던 우리가정을 일으켜주고 지켜준 곳이다. 행여 너희들은 필요에 의해서 다른곳으로 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곳 시흥에서 나의 생을 마감하련다" 라는 말로 나의 의지를 피력 하곤 한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란 말을 증명해 보고 싶은 것이 나의 솔직한 지금의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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