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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백산 물줄기 닿은 곳 정암사 '수마노' 탑
2015.08.23 | 정진해 문화재전문기자

평창 올림픽시장에는 메밀부침, 부끼미, 전병 등이 할머니 손놀림에 바삐 익혀 나온다. 정선 동강 야영장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정암사 수마노탑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많은 사람과 함께 여름의 무더위를 피해 동강을 찾아 조용한 휴식을 취했다. 이틀째 이른 아침은 정암사로 재촉하였다. 병방산 전망대에 올라 굽이 흐르는 동강을 바라보고 아침을 열었다.
소원을 빌면서 만진 포대화상의 배 어느덧 색깔이 변해가
정암사로 가는 길은 옛길이 아니었다. 굽이돌면 또 다시 나타난 굽잇길을 언제쯤이면 목적지에 도착할까 했던 지난 10년 전만 하여도 쉬고 또 쉬는 길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길은 넓고, 바르고, 짧아졌다. 강원도의 두메산골로 정평이 나 있던 간이역은 이젠 버젓한 역으로 변신했고, 까맣게 덮여있던 고을은 이젠 초록색이 그 옛 정취마저 감추어 두었다. 신평역, 별어곡역, 억새를 보기 위해 왔었던 민둥산역을 지났다. 사북읍 내를 벗어난 38번 국도에 이르니 어느새 터널을 나오면서 고한읍 내에 이르렀다. 머나먼 길이다.
삼갈래 삼거리에 이르니 헤어지는 도로이다. 정암사로 향하고 태백을 향한다. 철길을 따라가며 놓여 있는 굴다리는 아직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도로는 계곡의 모양에 따라 휘어지고 있지만, 이 계곡은 천연기념물 제73호로 지정된 열묵어 서식지로 일급수의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다. 열묵어는 압록강, 두만강, 청천강, 대동강, 한강, 낙동강 상류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여름에는 하천에서 가장 상류의 시원한 곳에서 살고, 겨울에는 중류지역까지 내려와서 월동하는 어종인데, 이곳 정암사 지장천은 세계에서 열목어가 살 수 있는 가장 남쪽지역이며, 숲이 잘 발달하여 열목어가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을 지닌 지역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계곡에 형성된 도시는 도로의 발달로 이곳 정암사도 옛 모습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20여 년 전에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작은 암자에 불과하였지만 지금은 일주문과 크고 작은 건물이 들어서고, 불교의 상징 석조물까지 배치되면서 그 규모가 확대되어 찾는 사람들도 그 수가 많이 늘어 북적거리는 사찰로 변화되어 있다.
정암사는 고한 삼갈래 삼거리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38번 국도 우측의 414번 지방도를 따라 고한읍민체육공원으로 가다 보면 전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함백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적멸보궁 구역과 요사채 구역으로 나누어 놓았다.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은 열묵어가 서식하는 곳으로 함부로 계곡물에 손을 담글 수 없는 통제구역이다.
정암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고승 자장율사가 당나라 산서성에 있는 청량산 운제사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세존의 정골사리, 치아, 불가사, 패엽경 등을 전수하여 귀국하였다. 자장은 귀국하여 이곳에 금탑, 은탑, 수마노탑을 쌓고 그 중 수마노탑에 부처님의 진신 사리와 유물을 봉안 후 건립하였는데, 이때가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이라고 한다. 이때 자장율사는 마곡사를 창건하였다고 전하지만 같은 해에 창건한 마곡사의 창건에 부처님의 진신사리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태백산정암사' 현판은 정암사의 문이다. 좌우로 토석 담에 기와를 올린 담은 우리의 전통의 멋이 있다. 여름날 일주문을 통해 들어서는 정암사는 조금씩 시가야 넓어지고 있다. 가장 먼저 만난 포대화상은 여름날에 더위만큼이나 배를 내 밀고 있다. 소원을 빌면서 만진 배는 어느덧 색깔이 변해가고 있다. 동전 한 닢이 머리, 입, 배, 손등. 발등에 올려있다. 돈은 돌고 돌아야 돈인데, 이 돈은 언제 돌고 돌까?
화려한 범종각 내에는 동종이 걸려 있다. 굳게 잠긴 문 틈새로 덩그러니 달린 범종은 스님만이 타종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적멸보궁으로 가는 극락교를 건넜다. 앞에는 자장율사가 정암사를 창건하고 평소 사용하시던 주장자를 꽂아 신표를 남긴 주목이 자라고 있다. 옛 나무는 그 흔적을 표피로 남기고 새로운 나무는 그 속에서 자라 많은 가지를 내고 자라고 있다. 주목은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고 하였다. 1,300년이나 긴 세월을 주심이 되었던 몸은 썩어 생명을 잃었지만, 다시 태어난 나뭇가지는 다시 1,300년을 향해 살고 있다.
통도사, 법흥사, 상원사, 봉정암의 적멸보궁과 더불어 정암사 적멸보궁을 포함하여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로 불리고 있다.
탑을 향해 자리 잡은 적멸보궁은 크고 작은 돌을 4단으로 쌓아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전면 3칸 측면 2칸의 몸체에 겹처마를 한 팔작지붕의 건물에서 조용하게 스님의 염불이 퍼져 들린다.
정면에 놓인 5단의 계단을 형성한 돌은 이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돌을 쌓았다. 화려한 단청은 주심포의 아름다움을 표출하였고, 각 기둥을 받치고 있는 초석은 자연에서 빌려온 둔중한 돌이다. 창방에 연화초의 단청이, 포벽에는 파련화, 화반은 덩굴을, 평방은 주화문초로 단청을 하였고, 서까래에는 연화초, 겹처마에는 곱팽이로 마감을 한 단청은 아름다운 불교 건축양식에서 볼 수 있는 건물이다. 전면 3칸의 좌우에는 반 벽을 만들고 그 위에 정자살문을 각 두 짝씩 달았고 중간 칸에는 궁판이 달린 4분합문을 달았다. 추녀 끝에 매달인 풍경에는 머리, 지느러미, 비늘까지 잘 표현된 고기 한 마리가 유영하고 있다.
적멸보궁 극락교 우측에 파손된 '불량원(佛粮願)'비가 세워져 있다. 이 비는 적멸보궁 중창 때 불사에 쓰일 곡식을 시주한 이들의 원이 기록되어 있다. 회색빛 돌이끼가 조금씩 덮고 있는 비는 연륜과 시주자의 공덕이 원만 성취하였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수마노탑을 향한 걸음은 숲 속을 거니는 산책의 길이기도 하지만 득도의 길이기도 하다. 함백산의 맑은 물은 쉬지 않고 흐른다. 금방이라도 꼬리를 치고 거슬러 올라갈 듯 한 열묵어는 보이지 않는다. 물은 부지런히 갈 길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탑으로 향하는 길은 곧 물에서 교훈을 얻는 장소이기도 하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한다고 하였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물은 서로 다투지 않는다. 물길이 서로 닿으면 한 몸이 되어 다시 갈 길을 간다. 물은 언제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한다. 세상에서 가장 낮으면서도 가장 넓고 깊은 바다처럼 살라는 교훈이다. 어디로 가든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고 한다. 강으로 가고 싶으면 강으로 가고 바다로 가고 싶으면 바다로 가라. 이것이 정암사의 계곡에서 들려주는 물의 교훈이 아닌가 생각된다.
수마노탑으로 향하는 길에는 작은 돌탑이 줄을 서 있다. 동적인 가짐에서 정적인 가짐을 가지려고 쌓은 돌탑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작은 마음이 아닐까? 길을 따라가면 수마노탑을 만날 수 있다는 안내자는 곧 크고 작은 돌을 가지런히 눕혀놓은 계단이다.
적멸보궁 뒤 산비탈에 세워진 7층 모전석탑이다.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은 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탑이다. 화강암으로 6단의 기단을 놓고 그 위에 탑신부를 받치기 위해 2단의 받침을 두었다. 탑신은 회녹색을 찐 석회암을 다듬어 쌓았는데, 표면은 정교하여 마치 틀에서 찍어낸 벽돌과도 같다. 1층 몸돌의 남쪽 면에는 감실을 마련했으며, 1장의 돌을 세워 문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는 철로 만든 문고리를 달았다. 지붕돌은 추녀 너비가 짧고 추녀 끝에서 살짝 들려있으며, 끝에 풍경을 달았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 수는 1층이 7단이고, 1단씩 줄어들어 7층은 1단이며, 지붕돌 윗면도 1층이 9단, 1단씩 줄어들어 7층은 3단으로 되어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으로는 청동으로 만든 장식을 올렸다. 탑 앞에 돌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 새겨진 연꽃무늬 등은 고려 시대의 특징을 나타내지만, 1972년에 해체 복원하면서 탑지 5개와 금·은·동으로 만든 사리구가 발견되면서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보수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탑이 정확하게 언제 만들어졌는가에 대해 확실하지 않지만, 유물을 통해 고려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탑은 조금씩 틈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탑신과 지붕에 이르기까지 틈이 많이 생겼다. 하루 빨리 조사가 이루어져 해체 복원을 하여야 할 것 같다. 언제 어떻게 붕괴될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지만 가능한 빠른 기간에 이루어졌으면 한다.
수마노탑에서 정암사 일주문 방향으로 내려다보니 마치 배가 계곡을 빠져나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천불천탑의 운주사 뒷산 거북 바위에서 바라보는 형상과 같아 보인다. 많은 사람 틈에서 오랫동안 탑을 감상한다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빨갛게 익은 괘불나무 열매가 여름의 태양 빛에 익고 있다. 먼 길 달려왔으니 다시 함백산 물줄기를 따라 되돌아가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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