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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에서 들려오는 주악천인상 '굴산사지 승탑'
2015.08.17 | 정진해 문화재전문기자

문화재명 : 보물 제85호 강릉 굴산사지 승탑(江陵 山寺址 僧塔) 보물 제86호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江陵 山寺址 幢竿支柱) 사적 제448호 강릉 굴산사지 (江陵 山寺址) 소 재 지 :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한국NGO신문] 정진해 문화재전문기자 =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하면 농사일을 하면서 피로를 잊고 능률을 올리기 위한 농요인 오독때기로 널리 알려진 마을에 신라 문성왕 13년에 범일 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절터가 남아 있다. 특히 이 마을은 대관령국사성황신으로 모시고 있는 범일 국사와 연관이 깊은 고장으로, 곳곳에 설화가 남아 있다.
범일국사는 이곳에 머물면서 신라 불교종파 중의 하나인 구산선문의 사굴산파를 개청한 장소이기도 하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한때 이곳에 주석하는 승려만도 200여명이 이르렀다고 하나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굴산사는 언제 폐사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굴산사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모든 것은 추정에 의지할 뿐이다.
오랫동안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다가, 1936년 전국 곳곳에 대홍수로 많은 피해가 있을 때 이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때 이곳에 대홍수로 쌓여있던 토사가 쓸려 내리면서 드러난 기초석과 계단 등의 일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2002년 영동지방에 닥친 태풍인 루사에 의해 다시한번 토사의 유살로 승려들의 생활공간인 승방지와 화랑지가 드러나면서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03년에 이 곳을 사적 제448호로 지정되면서 2011년부터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본격적인 학술조사가 이루지면서 지금도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 강릉 굴산사지 승탑(보물 제85호) ©정진해 | | 굴산사터에는 사찰터에서 떨어져 있는 당간지주와 범일국사의 사리탑으로 추측되는 승탑, 탄생설화와 관련된 석천과 학바위가 있다.
마을회관 앞에 이르면 가장 먼저 석천이라는 우물이 자리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설화에 의하면, 마을의 한 처녀가 석천에서 바가지에 해가 떠 있는 물을 마시고 태기가 있어 후에 아들을 낳았는데, 아버지가 없는 자식이라 하여 뒷산 바위 아래에 버렸다고 한다.
지금의 우물은 옛날 모습의 우물이 아니고, 이곳에 우물이 있었다는 표식에 불과하다. 우물 위에는 누구에 의해 머리 없는 불상을 얹어두었는데, 아마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불상에 대한 안내가 현재는 없는 상태이다.
승탑으로 가다보면 우측에 학바위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방향 표시판 데로 오르면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 밑에 아이를 버렸는데, 사흘 뒤 그곳을 찾았을 때 두 마리의 학이 교대로 따뜻하게 감싸고 열심히 열매를 물어다 먹이고 있었다.
▲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보물 제86호) ©정진해 | | 기묘하고 신비스러운 모습을 본 아이 엄마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다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집안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이름을 범(梵)이라 짓고 키웠다. 성장하는 범은 어머니와 이별을 하였다. “불초자는 어머니를 위하여 반드시 큰 사람이 되어 돌아올 것이니 근심하거나 저를 찾지 말아 주십시오.”하고는 떠났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학바위 입구에서 폐가 옆에는 정확히 주인공을 알 수 없는 승탑이 자리하고 있다. 범일국사의 승탑이라 추정하고 있으나 증명할만한 자료가 발견되지 않고 있지만 범일의 승탑으로 부르고 있다.
이 승탑은 통일신라시대부터 8각원당형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신라 말 또는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도굴꾼에 의해 도굴을 당하여 무너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98년 강릉대학교 박물관에서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처녀가 석천에서 바가지에 해가 떠 있는 물을 마셨다는 석천. ©정진해 | | 승탑은 매우 특이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3단의 하대, 8각 평면의 중대, 하부에 연화가 장식된 상대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 하대 하단석은 8각형으로 커다란 돌 하나로 이루어져 있는데 밑에는 넓은 지대석을 표현하고 위로 좁아지는 경사진 면에 수호의 상징인 사자상을 다양한 형태로 입체적으로 돋을 새김하였다. 면석 위로는 다시 갑석 형태의 굽형을 모각하고 상부 중앙에 각, 호 2단의 8각 괴임단을 두어 중단석을 받고 있다.
기단 하대 중단석은 수습된 파편의 형태와 문양을 참고하여 복원한 것으로, 모서리 8개가 돌출된 굴곡진 둥근 수반 형태이다. 아래 2단의 괴임을 두고 외부에서 상단에 이르기까지 구름이 새겨져 있으며 내부에는 8엽의 연화문을 돌리고 각 연잎 중앙으로 상단의 구름이 상서롭게 흐르게 하였다. 마치 연목에 연꽃이 피고 그 위로 흰구름이 날아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 두 마리의 학이 교대로 따뜻하게 감싸고 열심히 열매를 물어다 먹였다는 현장, 학바위 ©정진해 | | 연꽃은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아름다운 신행의 꽃으로 피우는 상징과 천상계를 상징하는 구름을 배치하여 신성한 장소임을 표현하였다. 중첩의 연잎을 새겼으며 중앙에는 8각의 괴임단을 두어 8각 2단으로 표현된 별도의 받침석과 상단석을 받고 있다. 기단의 하대 상단석은 아래에 별석 받침과 낮은 팔각 괴임을 두고 반구형의 둥근 형태로 표면에 3단의 각기 다른 형태의 구름무늬로 장식하였다. 안쪽의 중간에는 8각의 괴임단이 있어 기단 중대석을 받고 있으며 둘러진 좁은 홈은 주위 구름무늬 사이 낮은 곳에 홈을 두어 물이 흘러내리게 하였다.
기단의 중대석은 8각을 이루고 있으며, 모서리마다 구름무늬가 새겨진 기둥을 세우고 각면에 연화좌에 앉은 주악천인상이 장구, 훈, 동발, 비파, 소, 생황, 공후, 적으로 연주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기단의 상대석은 아래에 낮은 8각의 괴임단을 두고 그 위로 팔엽의 연화와 겹쳐진 사이 연잎을 둘러 장식하였다. 연잎 안쪽에는 초화문이 새겨져 있어 더욱 화려한 멋을 더해준다. 그 위에 8각의 갑석 형태의 받침 1단이 새겨지고 중앙에 각, 호, 각의 괴임단을 두어 탑신을 받고 있다.
탑신석은 아래가 넓고 우로 올라갈수록 약간 좁아지는 8각의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각 면의 모서리에는 좁은 우주를 모각하였다. 앞뒤 2면에 문비와 자물쇠를 이곳이 가장 중요함을 표현하였다.
지붕돌은 하부에 다소 넓은 각, 호, 각의 괴임단을 두어 탑신석 상부와 연결되고 있으며 각 모서리에는 추녀, 사래, 공포구조를 간략화한 부재를 모각하고 1층 처마 안 지붕 내부 공간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였다. 8각의 낙수면과 처마가 직선형이며 우동마루도 가느다랗게 조각되었다. 위로 갑석형태의 받침석 1단이 새겨져 상륜부를 받고 있다.
상륜부는 노반, 앙화, 보주가 순서대로 올려 져 있는데 노반은 8각으로 면석에 이중의 연화문이 조각되었고 위로 갑석형태의 받침을 마련하고 윗면에 얕은 원형의 괴임단을 마련하여 앙화석을 받고 있다. 앙화석은 밑면에 낮은 원형의 받침을 두어 노반 부재와 만나고 있으며 주위에는 내부가 장식된 8엽의 연판을 돌렸다.
▲ 대관령국사성황신으로 모시는 성황당. ©정진해 | | 위로는 각 모서리에 귀꽃이 솟고 전체적으로 문양이 조식되었으며 상부에 이르면서 보상화문 8판을 두루고 다시 8각의 받침석을 두었다. 보주석은 둥근 원형석 하단에 2중의 연화문을 장식하였는데 상단의 연잎은 바람에 흔들리는 듯이 표현되었으며 윗면은 평면으로 다듬어져 있다.
전체적인 형태는 마치 소용돌이치는 구름의 형상을 생동감 있게 표현된 조각은 황홀할 정도로 무척 아름답게 느껴진다.
마을 남쪽의 들에는 거대하고 웅장한 당간지주 한 쌍이 세워져 있다. 사찰에 행사가 잇을 때 당간에 깃발을 걸고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버팀돌이다. 한 쌍의 당간지주는 특별한 조식이 없이 돌을 다듬던 자국와 각 지주에 뚫려있는 2개의 구멍이 전부이다. 정상은 물고기의 입처럼 끝이 뾰족한 형상이다. 그러나 얼마나 깊이 묻혀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상으로 나온 정도의 크기가 묻혀있지 않을까 집작한다. 전반적으로 소박하나 규모가 거대하여 웅장한 조형미를 감탄을 한다. 강릉에는 이 외에도 대창리 당간지주(보물 제82호)와 수문리 당간지주(보물 제83호)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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