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정수사'
2015.06.14 | 정진해 문화재전문기자

문화재명 : 강화 정수사 법당 (江華 淨水寺 法堂 : 보물 제161호) 소 재 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해안남로1258번길 산142-0 (화도면)
▲ 앞면 3칸·옆면 4칸 규모의 맞배지붕 법당. ©정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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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NGO신문] 정진해 문화재전문기자 = 강화도 초지대교를 지나 해안도로 또는 전등사방향에서 이건창생가터를 지나면서 함허동천 계곡을 맞는다. 다시 고개 하나를 넘어 우측으로 약 1km의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면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동쪽으로 길게 누워있는 암릉의 발치에 해당되는 곳에 팽나무 숲속에 다소곳 자리 잡은 절, 아침 일찍 햇살을 받는 천년고찰 정수사(淨水寺)이다. 정수사는 강화군 소재의 사찰 중 규모는 작지만 석모도의 보문사, 온수리의 전등사와 더불어 강화도 3대 고찰 중의 한 곳이다.
▲ 툇마루가 있어 항상 편안하고 여유를 느끼는 전통한옥의 멋이 풍긴다. ©정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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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사는 신라 선덕왕 8년에 회정선사가 마니산 참성단을 배관한 뒤 그 동쪽 기슭에 앞이 확 트이고 밝은 땅을 보고 불제자가 가히 선정삼매를 정수할 곳이라고 하면서 창건하고 정수사(精修寺)의 편액을 걸었다고 전해 있다. 그러나 확실한 근거가 될 자료는 알 수 없고 다만 1957년에 대웅보전을 보수공사 하던 중 숙종 15년(1688) 수리 당시의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그 상량문에 세종 5년(1423)에 중창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대웅보전을 중창하면서 세종 8년(1426)에 함허기화(涵虛己和) 선사가 법당 서쪽에 맑고 깨끗한 물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알고는 그 이름을 ‘精修’에서 ‘淨水’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앞쪽 창호의 가운데 문은 꽃병에 꽃을 꽂은 듯 화려한 조각을 새겨 뛰어난 솜씨를 엿보게 한다. ©정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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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함허동천 계곡의 너럭바위에는 기화가 썼다는 ‘涵虛洞天’ 네 글자가 남아있는데,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계곡에는 차가운 물이 흘러내리고 있어 사계절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으로, 차가운 물에 살고 있는 가제가 바위틈과 물속 낙엽 밑에서 살금살금 기어 나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느 사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주문이 없다. 숲이 일주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싶다. 계단을 올라서면 경내에는 3체의 건물이 있으며 법당 좌측 뒤에는 정면 3칸에 측면 1칸의 맛배형 건축물인 삼성각이 있고 우측에는 정면 4칸에 측면 2칸의 오백나한전이 자리 잡고 있다.
▲ 주심포 양식의 공포는 연봉형 첨차가 매우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정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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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마당 뒤 암벽과 가깝게 자리 잡고 있는 법당(보물 제161호)은 6단의 기단석을 올리고 그 위에 정면 3칸에 측면 4칸의 단층 맞배집으로, 주심포식 건물이다. 정면에는 3칸의 툇마루를 두었다. 법당건물의 기둥은 원형이며 기둥을 받치는 초석은 자연석을 사각으로 자르고 가공하지 않은 채 사용되었다. 툇마루로 올라가기 위해 댓돌을 각 칸마다 두었고 마루는 우물마루로 짜여졌다. 기둥사이에는 창방이 놓여있고 중앙에는 화반이 구성되어 있어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이러한 건축물은 봉정사 극락전이나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은혜사 거조암, 도감사 해탈문 등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이다. 공포의 짜임새는 정면 보다 후면 공포에서 조선초기의 주심포 수법을 볼 수 있다. 즉 기둥 윗몸에서 비교적 긴 헛첨차를 내고, 이 끝에 소로를 놓아 주상에 놓인 살미첨차를 받치고 있다.
▲ 주심포 머리에는 벽사를 상징하는 귀면문을 새겼다. ©정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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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몸체에 비해 큰 편이라 매우 육중한 느낌을 준다. 몸체와 툇간 부분의 공포가 눈에 띄게 달라 시대적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몸체는 조선 초기 주심포계의 전형으로 간결한 모습이지만, 툇간의 공포는 조선 후기의 장식적 경향이 뚜렷하다. 기둥을 받치고 있는 연꽃이 매우 화려한데 다른 법당에서 보기드문 형식이다. 현판의 대웅보전의 글씨는 서예가 인전 신덕선이 썼다는 각인이 되어 있고 현판 정면의 좌우에는 벽사동물상이 배치하였다. 전체적인 단청은 뇌록바탕에 무늬는 백록을 사용하였다.
4개의 기둥에 붙어진 주련은 “摩訶大法王/無短亦無長/本來非早白/隨處現靑黃” 거룩하고 위대하신 부처님께선/짧음도 길음도 또한 아니며/본래도 검지도 희지도 않고/연따라 청황으로 나투신다네.라는 뜻을 전하고 있다. 정수사가 유명해진 것은 툇마루보다는 아름다운 통판투조방식으로 만들어진 꽃살문이다. 좌우에 정자살문을 두고 중앙에 사분합꽃살문을 배치하였다. 사분합을 장식한 꽃살창 양식은 화병에 꽂은 꽃을 투조하였다. 가운데 두 짝은 화병, 연꽃, 연봉, 연잎과 줄기를 새겼고 좌우 두 짝에는 화병과 목단꽃, 봉우리, 잎과 줄기를 널판 가득하게 조각해 문울거미에 끼어 넣었다. 법당 정면 공포의 첨차와 창방 위의 화반에서도 볼 수 있으며 첨차 좌우에 연봉형 첨차를 새겨놓고 소로를 받치게 하였다. 창방 위의 화반은 넓적한 수반에 연꽃과 연잎을 꽂아놓은 꽃꽂이 작품과 같아 아름답다. 단아하면서 산득한 단청의 배합이 화려하게 채화돼 부처님께 꽃을 바쳐 공양하는 마음씨가 가득히 담겨진 살창이다. 이곳 꽃살창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살창으로 손꼽히고 있다.
대웅전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과 4분의 협시불이 모셔져 있고 천정의 중앙에는 우물천장인데 그 주변은 빗천장이며 학을 그려놓은 문양과 보에는 용문을 그려 넣어 법당내부는 온통 문양으로 가득한 또 하나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지붕의 용마루에는 8장의 청수키와가 놓여있으며, 건물 좌우에는 풍판을 달아 비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하였다.
언제보아도 화려한 꽃살문과 겹처마의 단청은 여느 절집과는 색에서부터 문양까지 차이가 있음을 느껴진다. 이렇게 오랜 역사인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정수사는 오랜 세월동안 그 맥을 이어주기 위해 온갖 역경을 겪었던 옛 스님들의 그 책임에 찬사를 보낸다. 계단을 오르면서 답답했던 온갖 시름을 내려놓고 단아한 풍경소리에 한참을 귀 기울인다. 이 얼마나 맑고 깨끗한 소리인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계단을 내려오면 풍경소리도 숲속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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