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0여년전 세워진 신라의 큰절이었으며, 추사 김정희와도 인연이 있는 경주 남산 기슭의 옛 절터 창림사의 실체가 드러났다. 발굴기관인 계림문화재연구원(원장 남시진)은 최근 이 절터를 1차 발굴조사하다 금당과 회랑, 종각 등 주요 시설터를 확인했다고 30일 밝혔다. ▲ 창림사지 유적1차 발굴조사 출토 와당류 유물 © 문화재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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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이 경주시에 시행한 문화재 보수정비 국고보조사업의 하나로 이루어진 이번 조사에서 허가를 받아 계림문화재연구원(원장 남시진)이 발굴조사를 하는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경주 남산 일원(사적 제311호)’에서 통일신라 시대 창림사지 일부로 추정되는 금당지와 회랑지, 종각지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 창림사지 유적1차 발굴조사 출토 명문기와(1291년 연호명) © 문화재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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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림사지는 상, 중, 하 3권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 1차 발굴조사는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인 쌍귀부(雙龜趺)가 있는 중간 권역을 대상으로 하는데, 금당지와 회랑지, 쌍귀부의 비각지, 종각지, 축대, 담장 등의 유구들이 세 차례 이상 중복되어 복잡한 양상으로 확인되었다. 통일신라 시대에서 고려 시대로 편년(編年) 되는 연화문ㆍ보상화문(寶相華文)ㆍ비천문(飛天文)ㆍ귀목문(鬼目文) 와당(瓦當)과 명문 기와 등이 출토되어 8세기부터 14세기까지 사찰이 존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편년(編年)은 유물, 유구, 유적 등 고고학적 자료들을 시간의 선후로 배열하고, 연대를 부여하는 것을 말하며 보상화문(寶相華文)은 반쪽의 팔메트(palmette)잎을 좌우대칭시켜 심엽(心葉)형으로 나타낸 장식무늬를 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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