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영천 은해사 조실 포산당 혜인 큰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식이 불기 2560(2016)년 6월 27일 오전 10시 은해사에서 봉행 됐다.
지난 23일 입적한 혜인 스님의 이날 영결식에는 자승 총무원장, 해인사 방장 원각 스님과 주지 향적 스님, 중앙종회 의장 성문 스님 등 종단 원로들과 스님 및 불자 3천여 명이 참석해 혜인 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했다.
포산당 혜인대종사 略歷
1943년 제주도 남제주군 안덕면 화순리 990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56년 동화사에서 일타(日陀) 대화상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 1962년 10월 해인사에서 자운 대율사를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하였다.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제방선원에서 안거 수선하였다. 1971년 법보종찰 가야산 해인사 팔만대장경각에서 매일 5,000배 200일 동안 절하여 108만배 기도를 성취하였다. 1977년 법보종찰 가야산 해인사 교무국장 소임을 역임했으며, 1980년 제주불교중흥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81년 약천사 대작불사의 원을 세우셨다. 1996년 9월15일 약천사 낙성식을 가졌다. 1999년 6월1일 약천사를 제10교구 은해사 본사로 대한불교조계종단에 등록 2000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환희정사를 창건하셨다. 2001년 단양 광덕사 백만불전 건립 불사를 추진하셨고 2006년 참선수행의 원을 세우시고 덕숭총림 수덕사 정혜선원에서 수선안거 2007년 11월 26일 대한불교조계종 계단위원으로 위촉되셨으며 2012년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조실로 추대되셨다. 2014년 은해사 기기암선원에서 수선안거 2016년 현재 약천사 회주이시며, 팔공산 은해사 조실로 기기암선원에 주석하시면서 수선안거 중 2016년 월 일 팔공산 은해사 기기암선원에서 입적(入寂) 문하에는 18명의 상좌를 두셨다.
저서로는 『신심』, 『원력』, 『행복을 여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으며, 육성법문으로 『범망경 보살계법문』, 『칠월백중법문』, 『행복을 열어주는 요일법문』, 『부모은중경법문』, 『혜인스님 생활법문』 등 수십 종이 있다.
스님께서는 일생 신심과 원력의 삶을 표상하며 수행정진하는 가운데 전국 방방곡곡 불자들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발걸음을 하시며 수많은 불자들에게 수백차례의 감로법을 전하시며 전법도생의 삶을 살으시었다.
포산당 혜인대종사 行狀
포산당 혜인스님께서는 청신사 성무학거사를 부친으로 청신녀 이계옥보살을 모친으로 3남 3녀중 삼남으로 제주도 산방산아래 화순에서 출생하셨다.
어린시절부터 불교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 사찰에 가서 살기를 발원하였으나 번번히 부모님의 승낙을 받지 못해 그 꿈을 실현치 못 하였지만 13살이 되던 해 결국 모친의 승낙서를 받아 출가수행자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당대 최고의 선지식 효봉스님께서 지도하시는 동화사에서 일타대종사를 만나 상좌의 연을 맺고 사미계를 수지한 후 동화사 금당선원 하안거를 시작으로 참선납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교학이해의 부족함을 느껴 해인강원에서 부처님 경전을 공부하시고, 졸업 후 해인사 금강계단에서 자운 대율사를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하신 후 다시 제방선원을 주유하시며 약 10여년간 수선안거하셨다.
1980년 고향 제주로 돌아와 제주불교중흥회 회장을 맡으시어 제주불교의 중흥을 위해 동분서주 하던 중 제주에는 어디에나 내세울만한 가람이 없음을 안타까워하시어 1981년 서귀포시 대포동에 사철 약수가 흘러넘치는 아름다운 해안동산을 구입하여 약천사 대작불사의 서원을 세우셨다.
은사이신 일타대종사께서 부촉하신 圓滿佛事度衆生(원만불사도중생)의 이념아래 부처님 수행도량 건립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마치 불보살님께서 스님의 진실한 마음에 감응이라도 하신 듯 불사를 시작한지 겨우 16년 만에 약천사 대가람을 완성하고,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본사 은해사 말사로 종단에 등록 하셨다. 이후 뉴질랜드 수도 오클랜드에 환희정사를 창건하셨고, 단양 광덕사에 백만불전 건립불사를 추진하였다.
2006년부터 상좌들에게 일체소임을 위임한 후 여생을 수행정진으로 회향하겠다는 원력을 세우시고 덕숭총림 수덕사 정혜선원 하안거를 시작으로 다시 운수납자의 길을 걸으셨다. 2012년에는 대한불교조계종단의 계단위원으로 위촉되었으며, 같은 해 조계종 제10교구본사 은해사 조실로 추대되셨다.
2014년 은해사 기기암 선원 입방 후 수행정진 하시던 중 같은 해 7월 간암이 발견되어 수술을 받으셨다. 평소에도 신의를 가장 중시하시던 스님께서는 사전에 잡힌 대중과의 약속을 절대 어길 수 없다고 하시며 수술 후 불과 4일 만에 관악산 호압사에서 법문을 하시는 등 병마와 싸우면서도 불법유포와 중생교화의 소임에 한치도 소홀함이 없으셨다.
참선하는 사람은 좌복 위에서 죽기를 서원해야 하고, 법사는 법상에서 숨을 거두겠다는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후학들에게 늘 귀감이 되는 모습으로 일생동안 효도와 공경의 마음을 우리사회에 계몽시키며 부모은중경을 중심으로 불자들에게 신심과 효경심을 일구어 주셨다.
임종의 순간까지 염불주력을 일관하시며 이제 미련 없이 홀가분하게 사바세계를 떠나고자 한다고 하시면서 마지막 숨 멎으시는 순간까지도 제자들에게 일생동안 살면서 단 한사람 마음도 아프게 하지 말고, 절대 미워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자비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시면서 열심히 수행 정진하여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을 찾아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삶을 살라고 간곡히 당부하시며 조용히 ‘나무아미타불’을 부르시면서 사바의 인연을 접으시니 세납 75세, 법납 62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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