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에서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10년, 20년을 한결같이 아름다운 도반의 이름으로 부처님 말씀을 배우고 함께 수행정진한 삼장법사, 대삼장법사 수료식이 불기 2560년 4월14일 행해졌다.

참 진리이신 부처님 이땅에 오신 날을 봉축하며 많은 불자들이 함께 한 가운데 TBC 특별생방송, 봉축법요식에 이어 오후2시 20년 대삼장법사(13기~18기), 10년 삼장법사(93기~98기)수료식이 회주큰스님, 대중스님, 곽병해 신도회장님을 비롯한 많은 신도들과 가족들의 축하속에 옥불보전 대법당에서 봉행되었다.
수료법회 전 이날의 영광스런 자리가 있도록 해주신 부처님 전에 수료생을 대신해 각 기의 기장님들이 감사와 기쁨의 꽃공양을 올리고 수료생 모두는 오체투지 삼배의 예를 올렸다.
대학생 불자회 '가온'에서 "열매가 익어가듯, 인드라망, 보리수 나무 아래.."찬불가를 불러 축하했다. 삼귀의를 올리고 수료생을 대표하여 13기 김난선 기장과 이혜자 총무의 수료사가 있었다.
수료사에 이어 큰스님께 법을 청하는 청법가를 올리고 각 기수의 총무들은 부처님 진리의 말씀을 깨쳐 주시고 거룩한 이 자리를 만들어 주신 회주큰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꽃바구니를 올렸다.
회주큰스님은 20년, 10년간을 수행증진한 법우들에게 대삼장법사증과 삼장법사증을 수여하고대중스님은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로고가 새겨진 뱃지를 수료를 하는 법우 한 분, 한 분에게 직접 달아드렸다.
다음은 회주큰스님 법문 전문이다.
카톡, 카톡 그러잖아요.^^
10년, 20년 전에는 저런 카톡이 없었어요.
정말 격세지감을 느끼네요.
10년이면 뭐가 변한다 했죠?
20년이면 강산을 두 번...
그런데 제가 여기 와서 가까이 보니까 얼굴이 변했습니다.^^
10년 전에는 고왔는데 많이 늙었고...^^
20년 되신 분들은 많이 늙은 정도가 아니고 엄청 늙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고 이것이 진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살아있음으로서 만났다는 것을 생각하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10년 되신 분들은 우리 한국불교대학의 역사를 40퍼센트를
짊어지고 있고 20년 되신 분들은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24,5년의
역사이니까 약 70퍼센트 이상을 짊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긴 세월이면 긴 세월인데 그 증으로
10년 삼장법사증, 20년 삼장법사증을 드렸습니다.
이 증은 세상에 있는 어떤 증보다도 가치 있고
더 소중한 증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더 사시다가 저 염라대왕 앞에 가거든
다른 것은 아무것도 통하지 않아요.
저 염라대왕 앞에 갔는데 내가 집이 몇 채다.
그게 통할까요.
박사를 몇 개를 했는데 내 선행에 도움이 되고
내 선행을 가늠하는 그런 보증서가 될까요.
그건 아니요.
세속에 학문과 세속의 재산 이런 것은 사는 동안에 필요한 거지
염라대왕 앞에 가서는 아무것도 소용이 없어.
다만 필요한 것이 있다면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에서 받은 10년 삼장법사증,
20년 대삼장법사증 그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스님 저는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증 받으러 오라 해서 왔습니다.”^^
그럴수도 있는데 그렇지만 그것도 아직까지는 인연이
우리 불교대학하고 닿아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것입니다.
과거는 과거일이고 지금부터 다시 재발심 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우리는 한 번 발심으로는 안 돼요.
계속 재발심을 해야 됩니다.
우리 스님들도 공부하다가 지쳐서 속퇴하는 사람,
환속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다니다가 안다니신 분들은
스님들이 마치 속퇴하는 것과 같지 않느냐 이런 생각을 하거든요.
한 번 정법을 만나기가 힘이 드는데
한 번 정법과 멀어지면 다시 정법을 만나기는 더 어렵습니다. 살아보면...
그래서 오늘 10년, 20년...
특히 20년 대삼장법사증을 받으신 분들은 지금 나이에 20을 빼 봐요.
얼마나 젊었는가.... 그때는 시집 장가도 갈 수 있는 나이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무 소용없다.
지금은 누가 데려갈 사람도 없고...애도 낳을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지금은 아무것도 하실 수 있는 일이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불교대학에 와서 고급 공부를 하고
진리 공부를 하는 입장에서 공원에 나가서 다른 노인들처럼
그렇게 놀 수는 없잖아요.
그렇게 늙으면 안 돼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공원에 나가서 얼쩡거리면 안 돼요.
여기 와서 교양프로그램을 익히고
불교 얘기는 사실 제가 해보니 끝이 없어요.
옛날에 우리 다했다. 그건 다 빈말입니다.
연세가 이미 돌아서면 잊어버릴 만한 연세요.
우리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는
10년 이상은 수요일반에 공부하고 있는 중인데
강의를 중복하지 않는 특징이 있어요.
한다 하더라도 법사가 바뀌어도 바뀌고
같은 경이라도 누가 강의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또 강의하는 사람에 따라서 그 맛이 다릅니다.
지금 수요일반 강의는 화엄경 강의로 되어 있고
화엄경 강의는 지금 총무소임을 맡고 있는 대공스님이지요.
아침에 TBC 생방송 하는 것 보셨습니까?
텔레비전은 다 있는 모양이네요.^^
텔레비전에 얘기했던 대공스님이 강의를 하는데
공부를 엄청 많이 해서 가르치는 것을 제가 느꼈습니다.
화엄경 강의는 평생을 두고도 다 듣기 힘든데
1권부터 8권까지인데 마지막 8권이 곧 들어 가려고 합니다.
8권하고 제 생각에는 화엄경이 너무 중요한 경이고 해서
1권부터 다시 할까 생각하는데 1권, 2권은 제가 강의를 했고
중간에 오다가 최봉수 교수가 강의를 하셨고
그 다음이 대공스님이 강의를 하는데 대공스님이 강의를
새로 한다면 그건 처음부터 하는 것하고 똑같습니다.
제가 간곡하게 권유를 해드리는 것은 평생을 공부해도
만나기 힘든 화엄경 강의를 꼭 기별로 재발심의 인연이 되었으니
꼭 좀 하시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20년 대삼장법사증을 받고 가운을 입고 계신 분들은
초창기 때는 인원이 그리 많지 않고 해서 대충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분들입니다.
제가 이름을 보면서 증을 드리면서 살아 있구나.^^
참으로 반가운 분들이다. 참으로 살아 있어서 다행스럽고
이 기회를 통해서 공부를 더 하셔야 하겠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한 번 생각해 봐요.
20년...20년 세월이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정말 늙었다면 늙은 나이가 된 거요.
그때 당시에 40이라 하더라도 벌써 60이고
그때 60 된 분들은 80이고 그렇잖아요.
나이가 만만치 않은 거요.
“혹시 80 되신 분 손 한 번 들어 봐요.” 계시는가...
신상희 거사님 계시네.
80...그 때는 60초반 이었을 텐데...
60이면 요즘 한참이거든.
그 때는 한참 때 다니셨는데 벌써 80을 넘기셨네.
70넘은 분들도 더러 계실테고... 대부분 60은 넘었지.
지금 60이 넘었다 하더라도 그 때는 기운 팔팔한 40대였잖아요.
그 20년 세월을 누구한테 보상을 받느냐 이거요.
이제는 놀 시간이 없지 않느냐.
실제로 놀 시간이 없어요.
제가 살아 보니 남는 것은 공부밖에 없다.
공부만이 남는 거요.
경전공부가 되었던 마음공부가 되었던
남는 것은 공부밖에 없어요.
우리가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고 산다 할지라도
하루에 밥 두, 세끼 먹으면 되거든요.
우리가 다음 생을 받아야 되고
다음 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결정되는 것은 업이라. 업...
남는 것은 업밖에 없어요.
대단한 일을 했다지만 업 덩어리로 남거든요.
그 업이 깨끗 하느냐?
청정한 업이냐? 무거운 업이냐?
탐욕을 부리며 살았던 업이냐? 그런 것 밖에 없거든.
그렇게 했을 경우에 우리는 깨끗하고 청정하고
맑은 업을 가지고 다음 새을 준비해야 하거든요.
죽는다고 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그것이야말로 진리거든.
죽을 수밖에 없어.
그러면 이생보다는 좀 더 편안하고
이생보다 좀 더 나은 다음 생을 받아야 되지 않느냐 이거지요.
조금이라도 맑은 업을 받을 수 있는 길은 공부밖에 없어요.
경전공부... 경전공부를 통해서 늘 수행의 지시를 받는 마음공부...
경전공부와 마음공부만이 남더라는 겁니다. 제가 살아 봐도...
20년. 10년, 10년이라 하더라도 2006년 들어올 때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갔나 보면...
작년 2013년도에 우리 출판사에서 나온 다이어리인데
제가 2013년도 다이어리를 쓰고 있어요.
왜냐하면 제가 2013년도에 무문관에 들어갔기 때문에
2013년, 2014년, 2015년, 3016년 올해까지 다이어리가 없어요.
그래서 2013년 다이어리를 쓰는데 마침 제가 맨 뒤페이지를 보니
2013년까지 불교대학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어요.
1992년부터 93년, 94년, 05년, 96년...
제가 보기에는 13기부터 18기까지가 20년인데
이분들은 전체가 남구청에서 공부하시다가 건너오신 분이네.
저 남구청 전세집이 얼마였지요?
전세 삼천만원...^^
그 때 공부할 때 그 상황하고 지금 상황하고는 다르지요.
20년 되신 분들은 우리 불교대학의 초창기 멤버하고 같습니다.
왜냐하면 전셋집에서 살았으니까...
그 뒤로 여기 달력에는 96년에서부터 2013년까지 되어 있는데
92, 93, 94, 95 이렇게 네 줄이라.
그 위로 스무 개가 더 있는 거니까.
이 달력만 보더라도 20년 역사가 대단히 길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10년 되신 분들은 지금이 2016년이니까
2005년, 2006년 이 때쯤에 들어오시지 않았나 생각이 되는데...
93기가 몇 년도에 들어오셨어요?
2006년에 들어올 때 93기에서 98기가 다 같이 들어왔어요.
지금 여기가 옥불보전인데
그때 들어올 때 이 옥불보전을 짓고 처음입니까?
왜냐하면 옥불보전 낙성식이 3월 달에 적혀있거든요.
2006년 옥불보전 3월, 참좋은 어린이집 개원 9월,
구미도량 개원 9월19일, 중국 칭다오도량 개원 11월
무량수전 낙성식11월...그럼 2006년인가요?
옥불보전 낙성하고 2007년에는 참좋은 유치원이 개원되었고
참좋은 지역아동센터 무량수전이 개원되었고
2008년, 2009년, 2010년이 서울도량이 개원되었고
그 다음 팔공산도량이 개원되었고
2011년 호주 시드니도량이 개원되었고
2011년 우리 이서중고등학교가 8월에 인수되어서 운영이 시작되었네요.
영천 참좋은 요양병원 개언이 9월 달에 있었고
그 다음 2012년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많이 있었고
2013년도에 천일 무문관 청정결사가 시작되었고 그러네요.
구미도량 이전 개원이 3월...2014, 2015, 2016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여기 적혀있지 않고...
제가 보니 10년 역사라 하지만
우리 불교가 현재 지금 해야 할 일중에 하나가 복지와 교육입니다.
10년 사이에 복지... 병원도 결국 복지소속입니다.
무량수전의 발전...그리고 우리 복지법인 안에 7개 기간이 들어 있어요.
아주 많지요.
어린이집도 복지, 노인분들이 와서 쉬는 무량수전, 노인전문요양원
그리고 방문하는 재가센터, 기억학교, 고아원에 해당하는 참좋은우리집,
새로 생기는 치매센터 주간보호센터가 있고요.
우리가 지금 많이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복지, 그 다음이 교육...
어린이집, 유치원, 중학교, 고등학교...다 교육이잖아요.
어떤 분들은 초등학교는 안 짓습니까?
초등학교가 왜 필요합니까? 하고 물었더니
자기가 죽게 되면 어린이집도 우리 어린이집 다니고
우리 유치원 다니고 중고등학교도 우리 학교가 있는데
초등학교가 없으니 어디로 가야할지 그래요.^^
누가 초등학교 지을 위인이 없습니까?
백억이 있으면 짓는데...^^
대구 성당에서 운영하는 초등학교가 하나 있답니다.
그리고 기독교 개신교에서 운영하는 초등학교가 두 개 있답니다.
영신초등학교, 계성초등학교인가 그래요.
카톨릭에서는 효성초등학교가 있대요.
불교는 없대요.
무슨 일이 다른 종교가 다 가지고 있는 초등학교를 불교는 없어요.
후일에 여유가 생기면 초등학교를 세워야지
다음 생에 태어나서 어린이집부터 원스톱으로 해서
고등학교 졸업하면 바로 출가하는 거지..^^
요즘 출가자도 모자라는데...^^
지금 불교대학이 25년 역사라 하지만
최초 5년은 전셋집에서 어떻게 하면 땅을 짚고 다닐 법당을 지을까?
어떻게 하면 초파일 땅에 연등을 좀 달까?
그 때는 그것이 숙제였어요.
어떻게 하면 우리도 다른 절처럼 마당에 들을 좀 달까?
그러니까 5년 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5년(1992부터 1996)햇수로 5년 동안은 이쪽으로 옮겼어요.
옮겼어도 매일 옆집하고 소음 때문에 싸우고
근데 매일 싸우던 그 집도 우리가 사버리고 신라장 모텔도 사고
신라장 모텔이 지금 우리 무량수전이 된 것이고
이 일대의 한옥을 많이 사들였어요.
그래서 이렇게 된거지요.
20년 되신 분들은 자기 본인은 한 일이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겸손해서 하신 말씀도 되고
그러한 뜻있는 분들이 모이고 모여서 이 도량을
건립하게 되고 한 것입니다.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고 공을 세웠지만
지금 20년 되신 분들은 대웅전을 짓고 옥불보전을 지은 분들이거든요.
그때 한 분, 한 분의 뜻이 아니었다면 힘들었겠지요.
다 우리 것이다 생각하시고 더욱 더 마음을 내셔서
공부에 매진을 해야 되지 않느냐 이거요.
조금 다니다 보면
도반들끼리 마음이 안 맞아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신심이 떨어져서 그래요.
신심이 떨어지는 것을 주의해야 되거든요.
스님들도 신심 떨어지면 밖에 나가고 속퇴하거든요.
재발심을 해야 합니다.
지금 더운데 그 옷을 입고 앉아 계시는 것도
재발심의 계기로 삼아야 돼요.
옷은 멋있잖아요.
옷이 사람을 확 살리는 것 같거든요.^^
세속의 박사모, 학사모가 문제가 아니요.
오늘 이날을 계기로 해서 기수별로 단합을 해서 공부하자.
공부하자는 분위기로 가야 돼요.
그래야지 만남의 의미가 있는 거지요.
남는 것은 공부의 업밖에 없다.
남는 것은 마음공부의 업밖에 없다는 이 생각을 해야 돼요.
제가 여러 차례 다른 시간을 통해서 말씀드렸듯이
감포도량 저기가 힐링 명상센터가 되고
머지않아 실버타운형의 집들이 들어 설 겁니다.
그러면 거기 가서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월이 올 수도 있습니다.
어제부터 힐링센터니까 찜질방을 만들고 있어요.
80평, 50평, 50평...180평 찜질방이요.
이 사람들이 다 들어가도 괜찮지 싶어요.
여기서 셔틀버스도 다닐 수 있도록 할 것이고
89평, 50평, 50평이면 휴게소 50평....샤워장도 있어야 되고
저는 잘 모르지만 전문가들이 얘기를 해요.
연령대가 여기 있는 분들도 들어올 때보다 10년은 늙었지요.
10년, 20년이 지난 뒤에는 한 가정에 한 명이 살아요.
우리 시골사람들이 감포에 많이 와요.
경로당에서 한 차가 왔는데
물어보니까 한 명씩 사는 집이 대부분이요.
남자 한 명 사는 것이 30퍼센트,
무슨 이유인지 여자가 더 오래 살아...^^
여자가 혼자 사는 것이 70퍼센트...가족끼리 사는 것은 극히 더물어요.
하는 일이 없으니까 경로당에서 밥도 해먹고
시골사람들도 싸우는 일이 많고...
시골에는 혼자 사는 경우가 많은데 도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말이요.
후일에는 도시에 집이 있다 하더라도
셔틀버스를 타고 감포까지 와서 1박2일 찜질하고 다시 돌아오고
여유가 있으면 감포에서 실버타운을 정해놓고 살 수도 있고...
지금은 힐링 명상센터라고 해서 꾸미고 있는 중입니다.
바닷가에도 대충 마련하고 있고
바다에서 산으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도록 하고
올라가는 길도 백방으로 노력해서 올해 아마 길이 넓어져서
버스가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게 하면 오래 다닌 보람이 있을 겁니다.
시간도 되고 해서 전체적으로 결론을 내려서 말씀을 드리면
오늘 받으신 삼장법사증과 대삼장법사증은
참으로 중요하고 염라대왕 앞에 갔을 때
자신 있게 공부를 제대로 하지는 않았지만 증이 있다.^^
증만 있으면 다 되는 거라.^^
공부를 잘했던 못했던 졸업장이 있잖아요.
서울대학을 최고대학으로 치지만 공부 잘했는지 못했는지
그것을 따지지는 않거든.
김영삼대통령이 그 때는 인원미달의 철학과를 나왔거든.
그래도 서울대학교 나왔나 이러잖아요.
여기도 마찬가지요.
공부를 잘했던 못했던 10년, 20년 삼장법사증과
대삼장법사증을 내밀면 가산점 50점 따고 들어가는 거요.
지금 인생보다 백배 좋은 곳에 나고 극락갈 수 있는 가능성도 많고...
지금부터 다시 재발심을 하시기를 간곡하게 말씀을 드리는데
기수에 책임을 지고 있는 기장, 기총무들이
공부하자는 마음들을 모아 주시면 좋겠어요.
첫 번째는 살면서 제가 느낀 것은 공부밖에 없다.
남는 것은 마음공부, 경전공부 그것밖에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저는 가능하면 감포에 있으면서
큰 행사만 대구 와서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3년 무문관 결사 안거를 끝내고 감포에 있으면서
여기는 큰 행사에만 보고 있거든요.
왜냐하면 저는 공부를 하고 있어도 늘 공부가 미진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공부 전문가인 저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다 그렇다는 겁니다.
제발 공부 좀 해요.
두 번째 이렇게 좋은 모임이잖아요.
우리가 무슨 이원을 생각해서 모인 모임은 아니거든요.
불교공부가 뭐냐, 부처님공부는 뭐냐, 부처님은 뭘 가르쳤는가?
자의든 타의든 끌려서 여기까지 왔잖아요.
여기서는 돈을 벌려고 온 것도 아니고
시집장가 가려고 온 것도 아니잖아요.
내일(5월15일) 2시에 있는 미혼청년 모임에는
시집 장가가려고 오는 사람들도 더러 있어요.
여기는 그런 것이 아니잖아요.
내일 미혼청년 모임에 좀 많이 보내주시고
아까 축하노래를 불러주었던 아이들이 대학생들입니다.
집에 대학생 있으면 좀 보내 주고
여기 보니 대학생들도 없을 것 같다. ...^^
그럼 할 것이 뭐가 있겠나, 본인 공부만 하면 되지.
10년 쪽에는 대학생이 좀 있을 수 있겠고...
이쪽(20년)에는 청년도 좀 있겠고...
왜냐하면 청년은 50까지 청년이거든요.
우리 조계종 출가 기준이 50세 까지거든요.
YMCA 이런 곳은 65세 까지가 청년이니까...
경로당에 들어가려면 몇 살부터 입니까? 하고
우리 시골 사람한테 물어 봤어요.
65세 라고 해요. 65세부터 경로당에 들어갈 수 있어요.
제 생각에는 경로당에도 가지 마세요.
절 안에 들어와서 모임을 하세요.
여기 공간이 많습니다.
절이 넓어지다 보니까 법당이 많습니다.
3층 바로 밑에 층이 갤러리법당에서 하셔도 되고
커피참이 있는 육화전에서도 여러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거기서 신행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드릴테니까
그런 곳에서 모임을 가져도 됩니다.
공원에 나가서 놀 생각은 아예 마세요.
여기 와서 공양도 하시고 모임은 반드시 절에서 하세요.
절 안에서 반드시 모임을 하시기 바랍니다.
필요하다면 공간을 더 만들겠습니다.
세 번째는 초하루 기도에 오기로 하든지
관음재일 기도에 오기로 하든지 해서 한 달에 한 번
기도 날짜를 정해놓고 절 안에서 기도하면서 만나시기를
제가 말씀드립니다.
기수 전체가 매주 와서 공부하고 도반애를 돈돈히 하는 일은
최상의 일인데 그것도 힘이 든다면 한 달에 한 번만이라도
절에서 기도하고 절에서 모임을 가지기를 바라고
그러면 그런 인연의 끈으로 해서 10년, 20년, 30년 후에
돌아가실 때에도 도반의 기도 속에 돌아가시지 않을까 생각해요.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는 50년의 역사를 봤을 때
만 25년은 되지 않았지만 25년째를 맞이하고 있어요.
92년에서 지금 2016이기 때문에 햇수로 그렇게 됩니다.
앞으로 25년 동안 아주 중요해요.
7, 8년 전에 33년 기도를 하자.
33년 대수행대정진 목표를 세웠는데 그 마지막 해가
2041년이요.
2016에서 2041년까지가 얼마나 남았는가 하면 약25년 남았어요.
지난 세월 25년, 그 다음 25년...
우리 대삼장법사 받으신 분들은 20년 되었지요.
25년을 더하면 45년을 저하고 만나게 되는 거지요.
부부도 아닌데 지겹지요.^^
여기 앉아 계신 신상희거사님은 팔십 두셋 되었지요.
거기다 25년을 더하면 107세네.
거사님, 107세까지 사세요.
허계화 보살님 오셨으면 좀 나와 보세요.
전세포교당에 계실 때
공양주보살님 23년 전 그때 연세가
칠십 중반쯤 되었을 겁니다.
저는 97세 노보살님 상대하고 논다니까^^
보살님이 말은 않지만 다음 생을 생각하더라도
남는 것은 공부밖에 없다 이 생각밖에 없는 거요.
금요일이 되면 오후2시에 자비도량참법이라는 기도를 해요.
저런 몸으로 여기 와서 자비도량기도를 하신다니까. 한주도 안 빼고...
대단한 일이잖아요. 우리 젊은 사람, 젊지도 않았지만^^
젊은 사람들은 나이 많은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뭘 해야
될지를 생각해야 돼요.
저렇게 연세가 많으신 분이 자비도량참법 기도를 하시는 것은
마음가운데 진정한 마음이 아니면 못 나와요. 집에 놀고 싶지...
여기 나오는 것이 너무 좋고...
내가 살길은 공부밖에 없다.
다음 생에 갈 수 있는 업은 공부밖에 없다.
그걸 아시기 때문에 그래요.
문 나가자마자 제가 한 얘기 잊어버리지 말고 기수별로 단결하세요.
스님께서 저렇게 말씀하시니 공부 다시 하자
이렇게 결심해서 인생회향은 공부하면서 마음공부 하면서
절 도반을 의지해서 마지막 생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얘기하니 곧 죽을 것 같은데^^
자기 나이에 25를 보태 봐요. 2041년까지 살 수 있을지...^^
그것 만만치 않아요.
65에다 25를 더하면 90이다.
자기 나이가 60이면 25를 보태면 85다.
그때까지 살 수 있겠습니까?
장담을 할 수 있습니까?
살긴 살아야 되지요.^^
근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는 거요.
언제 저승사자가 잡아갈지 모르는 나이라.
옛날 같으면 상노인이라.
그래서 공부하고 놀고 하는 것도
법당에 와서 놀고 공부하라는 거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운 좋게 여기까지 왔잖아요.
한국불교대학에 들어온 것도 운이 좋은 거요.
도반들 만난 것도 운이 좋은 거고...
여기 있는 분들은 30년 가면 또 증을 주는데 ‘마하대삼장법사’라.
마하대삼장법사증은 30년이 되면 드리는 겁니다.
지금 10년은 지난 20년에 비해서 금방 닥칠 겁니다.
이제는 숨 몇 번 쉬고 나면
마하대삼장법사증 받아 오라고 얘기 할 거요.
곧 오지. 곧 닥칩니다.
10년에서 20년도 금방이라.
나이가 가속도가 붙어서 금방이라.
나이 50. 60이 넘어가면 금방 가버린대요.
그런데 공부 안 하고 되겠어요.
오늘 내가 보니까 동문회에서 신경 써야 될 것이
대삼장법사 뺏지하고 삼장법사 뺏지가 똑같은데 이건 문제가 있어요.
20년 대삼장법사증은 골드로 하고 10년 삼장법사증은
그린이나 은색으로 하든지 오늘 준 것을 빼앗지는 말고^^
30년 마하대삼장법사증은 뺏지를 다른 것으로 해야겠지요.
이왕 이렇게 마음을 내셔서 오셨으니 참으로 좋은 인연이라.
우리가 돈 때문에 온 것도 아니고 국회의원 선거하듯이
권력이나 명예를 색각해서 모인 것도 아니고
참으로 이런 모임은 순수하고 순수합니다.
너무나 청정한 모임이거든...
이 청정한 모임을 절대 깨지 말고 오래 오래 죽을 때 까지
이 모임을 가져가야 합니다.
이쪽에 있는 분들은 원을 세워요.
우리 거사님 25년이 지나 2041년까지 건강하시고
지금도 아주 건강하시고 연화봉사단 등 봉사활동도 많이 했어요.
그러니까 저렇게 젊으시지.
불교대학 연화봉사단이 최초 봉사단이거든.
지금도 얼마 전에 물어보니 회원이 50명이래요.
이 기라성같은 선배들이 있다고 보고 10년 되신 분들은
10년 가지고 공부했다고 말할 수 없어요.
지금까지 놀다 오신 분들은 지금부터 공부하면 돼요.
지금부터 다부지게 해야 돼요.
20년 대삼장법사는 말 할 것도 없고...
오늘 수료식이 재발심하는 특별한 날로 각인되시길 바라고
기장님들은 각 기별로 모임을 가지시고 공부하자는
얘기들을 많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치겠습니다.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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