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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인간의 삶에 희망 줘야 합니다”

2016.01.24 | 매일종교신문



한은숙 교정원장과 開敎 100년 맞은 원불교
“마음공부는 언제 어디서나 해야
 
“발전된 물질을 선용(善用)할 수 있는 정신의 힘을 기르자(정신개벽)는 것이 원불교(圓佛敎)의 개교 정신입니다. 개교 100주년을 맞아 글로벌화 전략을 정비하고 마음공부 등 사람들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종교로 더욱 나아가겠습니다.”

원불교가 2016년 개교(開敎) 100주년을 맞아 전북 익산에 있는 총부를 서울로 옮기는 첫 삽을 뜨는 한편, 세계적인 종교로 도약하기 위한 원년으로 삼고 있어 활기가 넘친다. 그 중심에 여성으로서는 두 번째 교정원장에 오른 여타원(麗陀圓) 한은숙(60)교무가 있다. 임기 3년인 교정원장은 원불교의 행정수반으로, 불교의 총무원장에 해당한다. 원불교 뿐아니라 한국 종교계를 통틀어 두 번째 여성 수장이다. 2015년 10월 취임한 그는 “행복한 정신개벽공동체를 구현하는 게 향후 3년간 교정 목표”라고 역설한다.

“올해에도 온 국민이 축복받고 은혜로운 삶을 살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1월19일 서울 광화문 한 음식점에서 신년 기자간담회를 가진 한 교정원장은 덕담으로 취임일성을 밝혔다. 익산에서 쌓인 눈을 헤치고 올라왔고, 서울에서는 한파를 만났건만, 입가에는 함박웃음이 번졌다. 미국에서 2년, 동토(凍土) 러시아에서 10년 등 해외 교화(포교)에 잔뼈가 굵은 그다. 한 교정원장은 원불교 개교 100주년을 맞아 새로운 한 세기를 시작하는 중요한 시점에서 원불교 살림을 맡게 됐다. 

“초심 실천하고 은혜 나누기, 원불교 100년 첫걸음
 
“미국이나 유럽 등 세계 종교는 권위주의보다는 실용주의 노선을 걷고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가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고, 희망을 줘야 함을 의미하지요.”

원불교 총부는 합리적인 한 교정원장을 맞아 회의가 즐거워졌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한 교정원장의 어깨 위에는 개교 100돌을 맞아 새롭게 도약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들이 올려져 있다. 우선 2월14일에는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서울사무소를 헐고 그곳에 원불교 100주년 기념관과 역사문화기념관 등 2개동을 짓는 착공봉고식을 갖는다. 2017년 11월에 완공되면 총부를 서울로 이전해 ‘원불교의 서울시대’가 본격 열린다. 4월25일~5월1일 100주년 기념대회 주간에는 시청 앞에서 한국의 근·현대 영가들을 위한 특별천도재가 열리고, 4월28~30일에는 국제종교지도자포럼이 열린다. 5월1일에는 하이라이트인 100주년 기념대회가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펼쳐진다. 서울에서는 처음 갖는 대규모 집회인데, 서울시대를 알리는 함성으로 손색이 없다. 남북관계 변수가 있지만 8월21일에는 평양과 백두산에서 ‘남북공동법회’도 열 예정이다.

“일찍이 창시자인 소태산(小太山) 대종사께서 매사에 남녀 차별을 두지 않았지요. 오늘의 시대는 힘의 논리보다 화합과 소통의 가치가 돋보여 여성이 활동하는 데 더 유리하다고 봅니다.”

한 교정원장은 이소성대(以小成大), 일심합력(一心合力), 사무여한(死無餘恨)의 개교정신을 되살리고, 원불교 최고어른인 현 경산 종법사의 세상을 향해 교법정신을 알려나가라는 결복교운(結福敎運)의 가르침을 힘차게 펼쳐나갈 각오다. “경산 종법사께서는 연초에 세 가지를 강조하셨습니다. ‘초심을 실천하자’ ‘나의 삶을 축복하자’ ‘은혜를 나누자’. 앞으로 100년을 향한 첫걸음을 그 마음으로 딛겠습니다.”  


원불교는 지구환경보호를 위한 태양광 사용 햇빛교당 건립 등 타 종단에 앞서가는 정책을 많이 시도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그가 설계하는 ‘글로벌 원불교’가 기대된다.

“세계 종교는 권위보다는 실용주의 추구해”
 
한 교정원장은 “개교 100주년(원기 101년)을 맞아 지난 100년의 소중한 자산을 바탕으로 개교 정신을 되새기고 다양한 사업을 펼쳐나갈 것”이라며 “일요일 법회시간 재조정, 여성교무의 복장문제 등도 시대 요청에 맞춰 변화를 꾀하겠다”고 밝혔다.

원불교 법회는 매주 일요일 오전에 열리는데, 주말을 이용한 여행이나 가족행사가 많은 점을 감안해 사이버 법회나 주중 법회 등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또한, 원불교 특유의 한복 복장과 쪽 찐 머리가 신세대 교무들에게 거리감을 주는 만큼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변화를 준다는 것이다. 9년전 원불교에서 첫 여성 교정원장을 배출한 바 있다. 더구나 올해는 개교 100주년이다. ‘앞으로 100년’을 내다보는 중요한 시점에 교단의 방향타를 잡은 셈이다. 
 
“원불교 여성 교무의 복장과 두발에 대한 질문이 많습니다. 우리 세대는 저고리에 치마가 가장 편한 복장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구세대의 생각이 다릅니다. 그렇다면 교단의 공식적인 의식 때는 저고리를 입고, 일상생활은 편한 복장으로 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성 교무의 두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점들을 모두 열어놓고 논의하겠습니다. 가능한 임기 중에 결과물이 나오게끔 하겠습니다.” 한 교정원장은 부드러운 리더십 속에 힘이 있다. 해외교화 활동도 오래 했다. 미국 뉴욕교당에서 5년, 러시아 모스크바 교당에서 9년간 근무했다. 모스크바는 소련의 몰락 직후인 1992년에 들어가 교당을 일구었다. 종교의 글로벌 흐름에 대한 안목도 깊었다. “미국이나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는 이제 권위보다 ‘실용주의’를 추구합니다.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느냐. 그게 핵심입니다. 원불교는 뉴욕 원다르마 센터를 중심으로 ‘영성훈련’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영성이나 마음공부를 통해 정신적으로 힘든 현대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합니다.” 한 교정원장은 ‘자연스러움’도 강조했다. 지난 100년을 돌아보면 원불교가 기성 종교의 제도적 틀을 너무 따라가진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교회처럼 일요일에 법회를 하는 걸 예로 들었다.

“지금은 또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주말에 나들이를 가는 가족도 꽤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종교가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마음공부는 교당 안에서만 하는 게 아닙니다. 일상 속에서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원불교,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종교가 돼야

한 교정원장은 “원불교의 창립정신과 개교정신을 되돌아보면서 새로운 도약을 하고, 실질적으로 삶에 도움이 되는 종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사이버 교화를 강화하고, 법당에 나오지 않아도 교도들이 실생활에서 교법을 생활화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도 마련되는데, 그 중에 4월25일에는 서울광장에서 특별천도재를 개최, 근현대 100년 동안 희생된 사회적 고혼들을 위로한다. 5월1일에는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100주년 기념대회를 연다. 이 두 대회는 지난 100년을 결산하고 동시에 교단의 역량을 결집해 ‘정신개벽과 인류평화에 새로운 희망을 열자’는 취지의 대규모 행사다.

한 교정원장은 여성 교무로 교정원장에 두 번째로 선임됐다. 이에 여성 교무로서 교단 내 여성들의 역할과 변화에 대해서도 화두를 던졌다. 원불교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해나가고 있다. 그는 “힘보다는 화합과 소통의 가치가 더 중요한 현시대에서는 여성의 능력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국내 590개, 해외 69개 교당을 중심으로 교화활동을 하는 원불교는 현대인들이 필요로 하는 명상과 원불교 교리를 통한 마음공부를 돕기 위한 명상센터 확대 등도 추진할 계획이다. 뉴욕주 클래버랙의 명상센터 ‘원달마센터’가 대표적이다. 미국, 러시아 등에서 12년간 포교활동을 하기도 한 한 교정원장은 화합과 소통의 리더십이 강하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그는 “어떤 역경 속에서도 원망을 감사로 돌릴 수 있는 것이 신앙이자 인생인 것 같다”면서 “종법사님의 올해 말씀처럼 모든 이들이 ‘초심을 실천하고, 나의 삶을 축복하며 은혜를 나누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원불교 최고지도자 경산 종법사의 신년법문 全文
 
원불교 최고 지도자인 경산 종법사가 2016년 병신년(丙申年) 신년법문을 통해 창립 100주년을 맞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또한 경산 종법사는 테러와 분쟁으로 어지러운 지구촌을 언급하며 새해에는 평화와 상생의 해가 되기를 소망했다. 그는 “세상의 평화를 위협하는 전쟁과 테러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이웃들에게 먼저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며 “무력으로 응징하는 것은 일시적인 방법이지 항구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억눌리고 고통 받는 민족과 이웃의 행복을 위하여 자비를 베풀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신년법문 전문(全文). 
 
대환희로 맞는 백주년(원기 101년)
 
새해를 맞이하여 법신불 사은의 크신 은혜와 광명으로 전 교도와 전 인류에게 무궁한 평화와 상생의 기운이 함께하기를 축원합니다. 개교 백주년을 맞이하여 새 종교 원불교를 창건하신 소태산 대종사께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또한 짧은 역사 속에서도 세계종교로 도약할 수 있도록 발판을 굳게 다져 주시고 혈심혈성을 다해 주신 재가출가 교도님, 그리고 지난 1세기 동안 원불교의 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성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 기쁨으로 개교 백주년을 맞이하여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의 뜻을 받들고 다음과 같이 실행함으로써 광대무량한 낙원세계 건설에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첫째, 초심(初心)을 실천하자.  
누구에게나 일을 시작할 때의 첫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 사이에는 약속이 있고 사회에는 많은 계약이 있으며 지도자에게는 국민과의 약속이 있습니다. 이 초심을 끝까지 지켜내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이며 지조가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회상도 소태산 대종사께 신성을 바치고 창립정신으로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서원이 있습니다. 재가출가가 그 서원을 체받아서 혈심혈성을 다하여 지키고 실천하여 오늘날의 발전을 가져 왔습니다.   우리는 백주년을 기념하여 나의 초심은 무엇이며, 우리 가정의 초심은 무엇이고, 교단이 사회에 한 약속은 무엇인가 다시 반조해 봅시다. 초심을 지키지 못한 것은 나태이며 욕심이고 역경을 이기지 못한 나약함입니다. 초심을 끝까지 실천하고 나아가서 구인 스승님들의 거룩한 창립정신을 나의 초심으로 받들어서 현실에 구현하는 교단의 주인이 됩시다.
 
둘째, 나의 삶을 축복하자.  
나는 누구인가를 깊이 생각하면 나라는 존재는 참으로 영원한 것이며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고 행복과 불행, 전쟁과 평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만능을 갖춘 조물주입니다. 범부중생은 무명 업장의 장막에 가려 위대하고 성스런 자아를 알지 못하고 스스로를 업신여기고 자의대로 윤회하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소태산 대종사의 심통제자인 우리는 소중하고 존귀한 나를 자각하여 나의 삶을 축복합시다. 나는 세상의 중심입니다. 나를 위하여 천지가 있고, 나를 위하여 교법이 있으며 부처도 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의 교법을 믿어 깨닫고 실천하여 나 스스로가 부처로 거듭나는 축복된 삶을 살아갑시다. 

셋째, 은혜를 서로 나누자.
우리는 숙세의 깊은 인연으로 소태산 대종사의 교법을 만나서 마음공부를 하여 부처를 이룰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인과의 이치를 믿고 만물에 불공을 올려 큰 복덕을 쌓는 길도 알았습니다. 또한 단생이 아니라 영생의 길을 알았고, 낙원세상 이룩하는 법을 배웠으며 크고 거룩한 법신불 사은의 은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재가출가는 이 은혜를 나 혼자 즐길 것이 아니라 사바세계에서 헤매고 있는 중생의 행복을 위해 제생의세의 제도사업에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일원대도를 말과 글로 전하고 몸으로 실천하는 교화대불공으로 가정, 사회, 국가, 세계를 구원하는 주역이 됩시다. 세상의 평화를 위협하는 전쟁과 테러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이웃들에게 먼저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무력으로 응징하는 것은 일시적인 방법이지 항구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습니다. 억눌리고 고통 받는 민족과 이웃의 행복을 위하여 자비를 베풀고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한편의 승리만으로는 평화가 올 수가 없음을 자각하여 인내와 노력으로 함께 공생공영하는 평화의 길을 열어가야 합니다.  지금 원불교는 2세기가 열리는 자랑스럽고 희망찬 또 하나의 출발점에 서 있습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초심을 잃지 않고 이 세상의 주인이 되어 은혜를 함께 나누며 평화와 상생의 세상을 가꾸어 가기를 기도합니다.  
원기 101년 새해 아침 종 법 사

원불교는 어떤 종교인가
 
원불교는 1916년 소태산 박중빈(朴重彬)이 창시한 종교이다. 박중빈은 그의 나이 26세에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대각(大覺)하고,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파란고해(波瀾苦海)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개교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정전(正典)』, 「개교의 동기」).

원불교 교명(敎名)에 대하여 제2대 종법사인 송규(宋奎)는 “원(圓)이란 형이상으로 말하면 언어와 명상(名相)이 끊어진 자리라 무엇으로 이를 형용할 수 없으나, 형이하로써 말하면 우주만유가 이 원으로써 표현되어 있으니, 이는 곧 만법(萬法)의 근원인 동시에 또한 만법의 실재인지라, 이 천지 안에 있는 모든 교법이 비록 천만가지로 말은 달리하나 그 실(實)에 있어서는 원(圓) 이외에는 다시 한 법(法)도 없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불(佛)은 곧 깨닫는다(覺)는 말씀이요 또는 마음이라는 뜻이니 ‘원의 진리’가 아무리 원만하여 만법을 다 포함했다 할지라도 깨닫는 마음이 없으면 다만 이는 빈 이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원불(圓佛) 두 글자는 각자 마음에서 근본적 진리를 깨친 바탕 위에서 나타낸 것이므로 서로 떠나지 못할 관계가 있다”라고 말하였다.

원불교는 그 연원을 불법(佛法)에 두고 있으며, 시대에 맞는 새로운 불교이다. 그러나 외면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이는 신앙 대상의 상징이 다르며, 불교와의 역사적 교섭관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교단의 운영방식과 제도 면에서도 종래의 사찰제도와는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즉, 근본적 진리는 서로 상통하나, 교단은 기존 불교의 분파적 입장이 아니다. 창조·모방·개혁을 시도하는 새로운 교단으로 볼 수 있다. 소태산은 불법을 주체로 삼아 새 종교를 주창했는데, 그가 깨달은 일원상의 진리, 즉 법신불(法身佛)사상을 주체로 하고, 모든 종교의 장점을 취하여 시대화·생활화·대중화의 개혁을 시도한 것이다.

시대화란 어느 시대에 처하든지 불법을 그 시대에 맞게 구현하자는 것을 말한다. 시대적 변화에 잘 동화하면서도 높은 차원으로 사람들을 지도해나갈 수 있도록 불법을 응용하자는 뜻이다. 생활화란 생활 속에서 불법(佛法)을 찾고 깨달아서 그 불법으로 새 생활을 개척해 나가자는 것이다.
대중화란 민중화, 서민화 또는 시민화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특수한 계층을 위한 불교가 아니라 누구나 다 같이 보람을 찾을 수 있도록 국한 없이 불법을 구현하자는 것이다. 원불교는 정신개벽(精神開闢)을 표방하고 있다. 다른 기성종교와는 달리 한국에서 창종(創宗)된 종교로서 후천개벽의 이념과 그 맥(脈)을 같이하고 있다.

최제우(崔濟愚)·강일순(姜一淳) 이후 또 하나의 민중종교를 탄생시킨 소태산은 앞으로의 세계는 동방이 중심이 되어 발전해가며, 특히 한국이 그 중심국가가 될 것을 예견하였다. ‘정신의 지도국’·‘도덕의 부모국’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인류 보편윤리에 입각한 민족정기(民族精氣)를 되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인정신을 길러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원불교는 다만 불교의 혁신에 그치지 않고 기성종교에 대하여 새종교의 출범이라 말할 수 있다.

소태산은 1891년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7세에 우주 자연현상에 대한 의문을 일으켰고, 9세 되던 해에는 인간만사에까지 큰 의심을 일으켰다. 이를 해결해보려고 산신과 도사를 찾기도 하였으며, 극진한 공을 드린 일도 있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 기도와 고행을 15년 동안 행하였다. 15세에 양씨(梁氏)와 혼인하여 2남1녀의 자녀를 두었지만, 계속하여 의문나는 일에 몰두하였다. 부모의 후원으로 가정을 겨우 지탱해오다가 20세에 부친상을 당하자, 생활고는 더욱 심하게 되었다. 그는 마침내 “장차 이 일을 어찌할고” 하는 탄식과 더불어 오직 의심뿐 모든 것을 갑자기 다 잊어버리는 지경(頓忘狀態)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온몸에 부스럼이 나고, 수염과 머리카락은 자랄 대로 자라 동네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린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험상궂게 변해 갔다. 이웃 사람들은 그를 완전한 폐인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던 중에 1916년 4월28일 이른 아침, 문득 생각이 밝아지면서 온몸이 상쾌해지고 모든 의심이 풀리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그의 대각의 경지였다. 소태산은 그때의 깨달음의 경지를 “만유가 한 체성(體性)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라고 말하였다(대종경 서품 1장).

소태산은 우주 자연현상을 통하여 진리를 깨달은 그 순간 인간사 변혁도 절실하게 요청 받았다. 다가오는 세상의 인간화작업이 시급함을 느끼고 새 도덕의 확립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그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표어(開敎標語)를 내걸고 정신개벽의 기치를 쳐들었다.
소태산은 그가 태어난 고향을 떠나지 아니하고 구도(求道)하였으며 그곳에서 도를 이루었다. 또한 그가 창교이념을 실현한 곳도 고향이었다. 그는 1917년 고향에서 뜻 있는 동지들을 모아 저축조합을 조직하여, 근검절약과 허례폐지, 금주·금연과 숯장사라는 제1차 시련으로 경제적 기초를 세우고, 1918년 3월에는 조상 대대로 버려 둔 해변의 갯벌에 자력으로 방언공사(防堰工事)를 시작하여 제2차 시련을 감행하여 1년만에 2만6000평의 옥답을 개간하였다.

그 당시 쓰러져 가는 한민족 국가 사회에 생산기반을 조성하는 역할을 하였다. 원불교의 창립정신은 공익의 길로 나아가고자 함이었으며, 사람들을 모아서 일심합력으로 나아가면 장차 어떠한 큰일이라도 이룰 수 있다는 신념을 기르기 위한 것이었다. 3·1운동이 한창이던 1919년 3월 소태산은 제2차 시련을 거친 제자들을 이끌고 새로운 회상(會上) 창립을 위하여 제3차 시련에 들어갔다. 소태산은 8인의 제자들을 이끌고 산상기도에 들어갔다. 그 해 8월21일 마침내 백지혈인(白指血印)의 이적(異蹟)이 나타났다. 기도를 마칠 무렵, 흰 종이에 맨손으로 인장을 찍자 혈인이 나타난 사건이다.

소태산은 “무아봉공(無我奉公)의 참뜻이 법계(法界)의 인증을 받았으니 만사는 이로부터 비롯되었도다”라고 말하며, 이 백지혈인의 기적은 진리로부터 새 회상의 창립을 인가 받은 것으로 해석하였다. 소태산은 방언공사와 산상기도를 통하여 교단창립의 기초를 다진 것이었으며, 소태산과 그의 제자들은 그의 탄생지인 길룡리를 토대로 또 다시 회상 공개의 준비에 들어갔다. 도와 학이 겸비된 수제자 송규(宋奎)를 얻은 후 교법의 틀을 짜 갔다.

한편, 1924년 4월 전북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지금의 원불교중앙총부)에 총부를 건설하려고, 「불법연구회」라는 임시 명칭으로 교문(敎門)을 열었다. 여기에서도 그는 제자들과 6만여 평의 황무지를 개간하는 한편, 주경야독의 생활로 오늘의 원불교 터전을 닦아나갔다. 이 과정이야말로 원불교 창립의 제4차 시련이었다.

소태산은 당시 모여든 인재들을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을 제정하여 훈련, 육성시켰다. 낮에는 농업부에서 개간과 생산의욕에 불타게 하고, 밤에는 소태산의 직접 설교와 훈도로 새 회상 건설의 희망에 부풀게 했다. 여기에서 바로 소태산이 실현하려고 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 된 것이다.
동정일여(動靜一如)·영육쌍전(靈肉雙全)·이사병행(理事竝行)의 실천이기도 했다. 원불교의 이러한 개척정신과 훈련방식은 여기에 참여한 사람이면 그 누구나 근면하고 성실한 지도자가 되도록 한 것이었다. 1926년에는 민중의 생활의식을 개혁할 방침으로 신정의례준칙(新定儀禮準則)을 발표하고, 종래의 생활의식에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사상을 널리 선양하였다. 1935년에는 산업기관으로 약업사 보화당(普和堂)을 개설하고, 교역자의 손으로 이를 운영하게 함으로써 생산성 있는 종교, 자력생활하는 종교의 터전을 닦아나갔다. 1940년에는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면 수계리에 대농장을 건설하였다. 이는 원불교 창립의 제5차 시련 작업이었다. 과수원과 축산업을 겸한 새로운 영농방식에 착수하여 명실공히 산업종교의 면모를 갖춘 것이다.

소태산은 교단의 사업목표를 교화·교육·자선에 두고, 차츰 이를 추진해나갈 기관을 확장해나간 것이다. ‘원불교’란 교명은 해방을 맞이하고 소태산의 유시에 의하여 제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가 개칭한 것이었으며, 1947년 4월에 재단법인 원불교의 등록을 필한 후 공포되었다. <수암(守岩) 문윤홍·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이 기사는 [매일종교신문] 제휴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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