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사회에도 기부문화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특히 연말연시를 맞아 불우 이웃을 돕기 위한 자선단체와 종교계 등의 활동을 넘어 이제는 범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어 주목된다. 이에 1억원 이상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들의 기부 활동을 중심으로 집중 조명해 본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 이상을 기부한 고액 기부자 모임 ‘아너 소사이어티’가 출범 8년 만에 1000번째 회원 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다. 2015년 12월24일 현재 총회원수는 993명으로, 이들이 내거나 약정한 누적 기부액은 1080억원에 달한다. 개인 기부의 활성화와 성숙한 기부문화의 확산을 통해 사회공동체의 안정적 발전을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2007년 12월 설립됐다. 5년 이내에 1억원 이상을 기부키로 하고 약정한 개인 기부자(최초 가입금액 300만 원 이상, 매년 일정비율 20%로 기부)는 약정회원이 되고 일시 또는 누적으로 1억원 이상의 기부금을 완납한 개인 기부자는 정회원이 될 수 있다.
최고액 기부자는 2013년 익명을 요구한 재일동포다. 그는 독거노인을 위해 29억원을 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2위는 2008년부터 누적금액 28억원을 기부한 최신원 경기 공동모금회장(SKC회장), 3위는 20억원을 기부한 정몽준 전 국회의원이다.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들을 직종별로 살펴보면 기업인이 가장 많다. 457명으로 전체의 46% 상당이다. 다음으로 익명 기부자를 포함한 기타(289명, 29.1%), 전문직(128명, 12.9%), 농·수산업 종사 또는 음식점 등 자영업자(45명, 4.5%), 법인·단체회원(35명, 3.5%), 국회의원·지자체장 등 공무원(17명, 1.7%), 방송·연예인(13명, 1.3%), 스포츠인(9명, 0.9%)의 순이다.
성별로 따지면 남성 회원이 842명으로 여성 회원 151명보다 많고, 실명을 공개한 회원은 866명, 익명을 요구한 기부자는 127명이다. 대다수 가입 연령대는 50~60대다. 50대 회원은 369명(37.2%)으로 최다, 60대 회원이 301명(30.3%)으로 뒤따른다. 이어 40대는 129명(13%), 70대 124명(12.5%) 규모였다. 30대(34명, 3.4%)와, 80대(24명, 2.4%), 20대(12명,1.2%)도 일정 수준을 차지했다. 강학봉 공동모금회 모금사업본부장은 “2007년 12월 처음 아너 소사이어티를 시작할 때만 해도 ‘과연 1억원이 넘는 고액 기부자가 얼마나 나오겠느냐’는 회의적인 의견도 많았다”며 “어느새 1000번째 회원을 기다리는 순간이 다가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척박했던 한국의 기부 문화에 단비 역할을 했다.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 ‘따뜻한 마음과 손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 사회에 일깨운 것이다. 출범 첫해인 2008년 6명에 불과했던 회원 수가 8년도 안 돼 160배 이상 불어난 배경이다. 특히 2012년(126명)을 기점으로 회원 가입 추세가 더욱 빨라져 2013년(210명), 2014년(272명), 2015년(283명·12월24일 기준) 등 3년 연속 연간 200명이 넘는 회원이 고액 기부에 동참했다. 기업인뿐만 아니라 농부나 퇴직공무원, 식당 운영자 등 평범한 시민들도 기부 행렬에 동참했다.
‘아너 소사이어티’의 주인공 993명 10년간 월급 쪼개… 20년 적금 선뜻… 10명 중 3명 ‘평범한 이웃’
우리 사회에 기부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高額)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는 출범 8년 만에 1000번째 회원 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다. 기업가, 운동선수, 연예인부터 농부, 경비원, 동네가게 주인 등 평범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기부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월급(120만원)을 아껴 마련한 1억원을 기부해 2014년 화제가 됐던 한성대 경비원 김방락(68)씨는 “지금도 1년 전 결정(기부)이 제 인생에 가장 보람찬 일로 남는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기부는 부자들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전북 정읍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한 김씨는 월남전 참전 이후 26년을 군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했다. 기부를 결심한 뒤 박봉의 경비원 월급을 쪼개 적금을 들었다.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경비실에서 버너로 밥을 해먹기도 했다. 기부한 1억원 가운데 1000만원은 한성대 학생 5명의 장학금으로 쓰였다.
▲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인 김방락씨(오른쪽)가 2014년 11월 경비원 월급을 아껴서 모은 1억원을 김주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에게 전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 |
그런데 한성대 측이 최근 김씨에게 해고통보를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내집’처럼 생각하며 10년 넘게 일해 온 한성대에서 내쫓길 위기에 처하게 돼 여론이 들끓고 있다.
◆보통 사람들의 통 큰 기부
2014년 강릉에서 우유 대리점을 운영하며 1억원의 기부 약정을 한 김형남(45)씨는 “2009년 다니던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며 “새로운 일을 하면서 조금씩 여유가 생기자 ‘나는 이 정도만 가지면 된다. 어려운 분들을 위해 나누자’는 마음에 기부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남들의 시선이 걱정됐지만, 막상 기부를 결정한 이후에는 오히려 삶 전체가 더 보람차고 즐거워졌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군포시에 사는 허위덕(77) 할머니는 20년간 모은 적금 1억원을 기부해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허 할머니는 “평생 내 이름으로 집 한 채 가져본 적이 없지만 기부를 하고 나니 인생에 큰 자부심을 갖게 됐다”며 기뻐했다. 1억원 이상을 기부한 고액 기부자라고 하면 특별한 사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수많은 주인공들이 평범한 보통 사람이다. 현재 982명의 회원 가운데 직업별로는 기업인이 46%(452명)로 가장 많지만 식당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4.5%(44명), 농어업인, 카센터 사장, 익명기부자 등 기타로 분류된 직업군도 28.9%(284명)를 차지했다. 공동모금회 관계자는 “현재의 위치보다 과거에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이겨낸 분들이 기부 약정식에 오셔서 하시는 말씀을 듣다 보면 저절로 존경의 마음이 생겨난다”며 “이분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어려움도 긍정의 힘으로 극복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언제든 나누려고 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 아너소사이어티 경기 77호 허위덕 할머니 © 매일종교신문 | |
◆기부문화 점차 선진국 형태로
기부 참여자들이 늘면서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도 선진국형으로 바뀌고 있다. 기존의 기업 중심에서 개인들의 십시일반(十匙一飯) 기부 참여가 늘고 있는 것이다.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전세계 150여개국을 대상으로 기부와 자원봉사 문화를 평가해 낸 순위를 보면 2010년 한국은 81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2015년에는 64위로 약진했다. 2015년 11월 누적 약정액 1000억원을 넘은 아너 소사이어티는 미국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 ‘토크빌 소사이어티’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로 성장했다. 덕분에 지난 9월에는 세계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세계공동모금회가 자선 라운드테이블 행사를 한국에서 개최했다. 모금회 관계자는 “이렇게 짧은 시간에 개인 고액 기부자가 급격히 늘어난 우리나라 사례를 보고 세계가 놀란다”며 “공동체 전통이 강한 우리 사회에선 한 사람의 기부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확산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2007년 12월 출범할 당시 참여자가 없어 6개월간 실적을 내지 못했다. 그러다 2008년 5월 남한봉 유닉스코리아 회장의 첫 가입을 시작으로 그해 6명, 이듬해 11명, 2010년 31명, 2011년 54명을 기록했다. 이후 2012년 126명, 2013년 210명, 2014년 272명, 2015년 283명이 새로 가입했다. 연간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300명 시대도 열릴 전망이다. 기부 문화 확산의 숨은 공로자로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들을 빼놓을 수 없다. 2009년 홍명보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시작으로 야구선수 김태균·진갑용·정근우, 프로골퍼 최나연·김해림, 축구선수 출신의 박지성 등이 동참하며 체육계에 기부 문화를 확산시켰다. 방송·연예계에서는 2009년 방송인 현영을 시작으로 영화배우 수애, 방송인 김보성·박해진·안재욱, 가수 현숙·윤아·인순이·수지, 팝페라 테너 임형주 등이 기부 릴레이 바통을 이어갔다. 이들은 기부에만 그치지 않고 직접 홍보대사나 홍보 활동에 참여해 나눔문화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는 “자기 자식에게 재산을 직접 물려주기보다 자식이 살아갈 세상을 바꾸기 위해 사회적 기부를 한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그러한 기부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1억 기부자 모임… 익명의 천사 127명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아너 소사이어티’는 1억원을 일시 기부하거나 5년 이내에 1억원을 기부하기로 약정하고 매년 나눠서 납부해도 가입할 수 있다. 1억원 약정회원의 경우 최초 300만원 이상을 내고, 나머지는 매년 2000만원씩 나눠서 내면 된다. 기부자는 실명을 밝히거나 본인의 의사에 따라 익명 기부도 가능하다.
2015년 12월24일 현재 993명의 회원 가운데 익명의 기부자는 127명이다. 기부자는 자신이 낸 기부금의 사용처를 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억원 가운데 절반은 용도를 지정하지 않는 일반기탁으로 내고, 나머지 5000만원은 교육이나 의료지원을 위해 써달라고 지정할 수 있다. 기부금은 소득세법에 따라 법정기부금으로 인정받아 본인 소득 금액의 100% 한도에서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 가입문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02)6262-3092)로 하면 된다.
“할아버지가 늘 강조했던 ‘여덕위린’ 실천… 아내도 동참해 깜짝”
‘여덕위린(與德爲隣), 덕으로써 이웃하면 모두 친해질 수 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 손에 자란 허천구(76) 코삭 회장이 할아버지에게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다. 허 회장은 12월23일 “유학자이셨던 할아버지는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농사지을 땅도 공짜로 빌려주셨다”며 “어린 손자에게 여덕위린 네 글자를 적어주며 ‘항상 이웃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하셨다”고 회고했다. 할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인지 허 회장은 어려서부터 마음속에 “언젠가 나눔을 실천하며 살겠다”는 뜻을 품었다고 했다.
▲ 12월23일 서울 중구 사랑의열매 회관에서 열린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식에서 허천구(76) (주)코삭 회장이 9억원, 부인 김민정(73)씨가 1억원 기부 약정을 맺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허 회장, 부인 김민정씨, 김주현 사무총장. © | |
그래서였을까.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사랑의 열매’회관에서 열린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가입식에 부인 김민정(73·여)씨와 참석한 허 회장은 행사 내내 싱글벙글했다. 허 회장과 김씨는 각각 9억원과 1억원 기부를 약속하며 아너 소사이어티의 986호, 987호 회원으로 등록했다. 이들이 기부한 금액은 집안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과 청소년 복지시설 지원에 사용된다. 허 회장은 “인생을 의미 있게 마무리하려고 기부를 결심했는데, 내가 ‘기부를 하겠다’고 하자 적극 응원해 준 두 아들 부부에게 고맙다”면서 “특히 아내가 ‘나도 조금씩 모아 놓은 생활비 등을 모두 기부하겠다’고 동참해 줘서 정말 놀랐다”며 가족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사실 허 회장은 청년시절부터 나눔활동을 해왔다. 20대 때 회사 일로 미국 출장을 갔다가 우연히 방문한 사회복지시설에서 나눔문화를 접하면서다. 그는 “시카고 중심가에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 건물이 있었는데 어려운 사람들이 와서 식사를 하거나 세탁이 된 옷을 입고 나가는 게 흥미로웠다”며 “해당 시설을 직접 찾아가 어떻게 운영되는지와 자원봉사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고 말했다. 그 이후 허 회장은 삼미그룹 임원을 거쳐 고려물류와 아시아냉장을 창업하는 등 40년가량 기업가로 활동하면서 장학사업에 공을 들였다. 모교인 춘천고 학생을 위한 소양장학회에 수차례 기부했고, 춘고삼일장학회를 발족해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동안 고향인 강원도 지역사회를 위해서도 대부분 ‘이름을 밝히지 않은 후원자’로 15억원을 기부했다. 어려운 이웃과 지역사회를 돕는 것 자체가 보람이고 기쁜 일인데 굳이 생색을 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을 바꿨다. “지금까지는 익명기부를 주로 해왔는데 나를 보고 더 많은 분들이 나눔에 동참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 실명기부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자신의 기부금이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투명하고 올바르게 사용될 수 있도록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장학사업을 하며 느낀 아쉬움도 피력했다. “장학사업을 제대로 해보려고 해도 여러 가지 법규에 얽매여 한계를 느낀 적이 많았다”며 “(장학사업을 명목으로 사리사욕을 챙기는) 나쁜 사람들을 법으로 제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좋은 뜻으로 하는 사업까지 제재조항에 걸려 어려움을 겪는 일이 없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허 회장은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가입식의 마지막 순서로 ‘나눔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적어 달라’는 부탁을 받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펜을 쥐고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써내려 갔다. “나라가 잘살아야 모두가 잘살고, 모두가 잘살아야 우리 후손들도 행복할 수 있다.” 곁에 선 부인도 “나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고, 나아가 세계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적었다. 그 짧은 문장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는 노부부의 간절한 바람과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허 회장은 “앞으로도 힘닿을 때까지 기부하며 현재의 나를 있게 해준 국가와 사회에 보답하고 미래 인재 양성에 기여하겠다”며 “나의 기부가 앞으로 또 다른 기부자를 만드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환하게 웃었다.
각박한 세상 함께 녹이는 가족들…늘어나는 ‘기부 명문가’
한국 사회의 기부문화 확산에는 가족의 힘이 컸다. 예전엔 가족의 반대로 기부를 망설이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엔 일가족이 기부에 동참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12월23일 현재 가족이 함께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에 참여한 ‘가족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은 70가족 150명이다. 2011년 류시문(67) 한국사회복지사협회장과 아들 류원정(30)씨 부자 회원을 시작으로 그해 이덕우(82) 덕양 회장과 장선오(77)씨 부부가 동참했다. 2012년에는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한 원영식(54) 오션인더블유 회장이 부인 강수진(44)씨와 외아들 성준(19)군과 함께 가족 회원으로 이름을 올리며 가족 아너 시대를 열었다.
2008년부터 회원 가입이 시작된 아너 소사이어티는 4년만에 가족 회원이 나왔다. 2011년 2가족에 불과했던 가족회원은 2012년 9번째 가족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나왔고, 2013년에는 부부와 가족 회원을 포함해 모두 17가족이 이름을 올렸다. 2014년에는 11가족의 익명 기부자를 포함해 모두 33가족이 고액기부에 동참했다. 12월23일까지 가입한 가족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은 전체 회원의 15%에 달한다. 공동복지모금회 관계자는 “가족 회원은 주로 가족 중 1명이 먼저 가입한 뒤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고 다른 가족들에게 이를 권유하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 들어서는 가족들이 함께 기부에 참여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거액의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밝힌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나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는 모두 부부가 함께 재단을 만들어 기부에 나서고 있다.
한편, 아너 소사이어티의 출범 8년 만인 2015년 안에 1000번째 회원이 탄생할지, 온 국민이 기대감 속에 지켜보고 있다.
얼굴 없는 천사되어…고인의 사랑담아… '나눔 홀씨' 확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아너 소사이어티’가 2015년 12월24일 현재 총회원수 993명(누적 약정금액 1080억원)을 기록했다. 이들 회원 중에는 ‘얼굴 없는 천사’인 익명기부와 유언을 받들어 기부하는 ‘고인기부’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 ‘대구 키다리 아저씨'가 전달한 1억2000만원 수표. © 매일종교신문 | |
◆얼굴 없는 천사, 익명기부
“꼭 필요한 곳에 도움이 되도록 사용해 주세요.” 지난 12월23일 오후 4시, 한 60대 남성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지회에 “근처 식당으로 잠시 나와 달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모금회 직원이 나가자 식사를 하던 60대 남성이 메시지가 적힌 광고 전단지와 1억2000만원 수표 한 장을 건넸다. 대구의 ‘키다리 아저씨’는 “여윳돈을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절실한 이웃을 위해 차곡차곡 채워온 나눔통장을 해약해 마련한 성금”이라며 “정부의 지원이 미치지 못하는 소외된 이웃을 도와 달라”는 말만 남긴 뒤에 손 인사를 하고 떠났다. 키다리 아저씨는 2012년 1월 모금회를 방문해 익명으로 1억원을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2012년 12월 1억2300만원, 2013년 12월에 1억2400만원, 2014년 12월 1억2500만원을 기부하는 등 총 6억에 가까운 큰돈을 기부했지만, 자신의 이름 밝히기를 끝내 거부했다. 모금회 관계자는 “키다리 아저씨가 아너 소사이어티와 더불어 백혈병 어린이, 저소득층 아동 돕기 등에도 많이 참여하는 등 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다양한 기부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모금회에 따르면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한 993명의 회원 중 12.8%인 127명이 익명 기부자이다. 아너 소사이어티 최고 기부액인 29억원을 선뜻 내놓은 기부자도 익명을 고집했다.
◆유언으로 뜻 이룬 고인기부
“언제나 이웃을 보살피고 위하며 살아라.” 2010년 향년 75세로 숨을 거둔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은 생전에 아들 김중도(35)씨에게 입버릇처럼 이런 당부를 하곤 했다. 아들 김씨는 12월24일 임세우(54·앙드레김 아뜰리에 실장)씨와 함께 부친이 생전에 기부한 6200만원에 3800만원을 추가로 기부해 아버지를 아너소사이티에 가입시켰다. 김씨는 “이웃을 돌아보는 연말을 맞아 생전에 아버님이 기부했던 기록들을 살펴보다 공동모금회에 기부금을 보낸 내역을 보고 추가 기부를 결심했다”며 “생전에 국내외의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애쓰셨던 아버지께서도 아너 가입을 무척 좋아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앙드레 김은 993번째 아너 회원으로 등록됐고, 가족이 고인의 뜻을 받들어 기부를 한 14번째 아너다. 고인(故人)기부는 남은 가족들이 망자(亡者)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선행이다. 나눔과 기부에 관심이 많았던 고인의 뜻을 받들어 배우자나 가족들이 고인의 이름으로 기부하는 것이다. 첫번째 고인기부자였던 서근원씨는 루마니아 조선소 건설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숨을 거뒀다. 서씨가 숨진 뒤 유가족인 삼남매는 서씨의 사망보험금을 공동모금회에 기부하고 서씨를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시켰다. 서씨의 삼남매는 “죽은 형제처럼 정직하게, 하지만 빠듯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동생이 남긴 돈이 사용되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 12월24일 서울 정동 사랑의열매 회관에서 열린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식에서 고 앙드레 김의 아들 김중도씨(왼쪽)와 김주현 공동모금회 사무총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 |
김주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기부금 투명하게 운영해 신뢰 확대…2016년 빈곤·질병·소외에 집중 배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꿈이 가능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제 가슴이 뜨거워집니다.”성탄절을 하루 앞둔 12월24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김주현 사무총장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너 소사이어티’ 1000호 가입을 목전에 둔 소감을 밝혔다. 김 사무총장은 “2012년 2월 처음 부임했을 때, 아너 소사이어티 100호 가입식을 진행하면서도 1000호까지 갈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며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눔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눔의 문화를 확산해 나갈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1억원 이상 개인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는 2007년 11월 처음으로 문을 열었지만 6개월 동안 가입자를 찾지 못했지만, 2008년 5월 처음으로 6명이 가입한 뒤 기하급수적으로 가입자가 늘었다. 출범 8년 만에 1000호 탄생 소식이 곧 전해질 전망이다. 모금액이 늘어나고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면서 김 사무총장을 비롯한 모금회가 느끼는 부담감도 커지고 있다. 기부문화가 척박한 한국 사회에서 여러 기부자가 십시일반으로 모은 기부금을 투명하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어렵게 살린 기부문화의 작은 불씨가 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사무총장은 “기부자들이 모아주신 기부금을 투명하게 운영해서 신뢰를 키워가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에 의한 법정 기부단체로 국회에서 정기 감사를 받고 있고, 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시민감사위원회 등 외부 단체에서도 모금회 운영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금회는 ‘한국의 기부문화가 아너 소사이어티와 같은 고액기부에만 의존하지 말고 소액기부를 보다 활성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를 경청하고 있다. 김 사무총장은 “기부문화가 선진화되려면 개인기부가 활성화돼야 하는데, 미국은 전체 기부금액 중 개인기부가 62%에 달하지만 우리나라는 35%에 그치고 있다”며 “개인 기부자들이 늘어날 수 있도록 기부의 계기를 제공하고 그 방법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금회는 보다 쉽게 기부할 수 있도록 온라인을 이용한 계좌이체, 포인트 기부, 모바일 앱(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한 기부 방법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김 사무총장은 “기부금은 필요한 사업을 신청받아 배분하고 있는데, 2016년에는 ‘빈곤·질병·소외’라는 세 가지 어젠다에 집중해 기금을 배분할 계획”이라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국제회계 기준을 도입해 재정을 보다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운용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사랑의 온도탑 51.7도…한달 새 1774억 모금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연말연시 이웃돕기 범국민 모금운동인 ‘희망2016나눔캠페인’을 통해 한 달만에 1774억원을 모금했다고 밝혔다. 공동모금회는 지난 11월23일부터 2016년 1월31일까지 두 달여에 걸쳐 3430억원을 목표로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목표액은 2014년 모금액인 3346억원 대비 2.5% 증가한 액수다.
▲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사랑의 온도탑 © | |
모금 현황을 표시해주는 ‘사랑의 온도탑’은 목표액의 1%에 해당하는 34억3000만원이 모금될 때마다 수은주가 1도씩 올라 목표액이 달성되면 100도가 된다. 12월24일 현재 51.7도를 기록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익명의 기부자가 모금함에 1000만원이 든 봉투를 넣는 등 뜨거운 모금 열기로 목표액을 초과하며 100.5도를 찍었다. 모금 첫날 250억원을 기탁한 현대자동차그룹을 시작으로 3부 요인인 박근혜 대통령과 정의화 국회의장, 양승태 대법원장도 금일봉을 기부하며 이웃돕기에 동참했다. 국내 주요 기업과 더불어 개인들의 십시일반 기부도 한 달째 이어지며 온도계의 수은주를 높이고 있다. 2015년 캠페인 슬로건은 ‘나의 기부, 가장 착한 선물’이다. 기부는 이웃에게 소중한 기쁨과 가치를 전하는 가장 좋은 선물이란 뜻이다.
사랑의온도탑 기부는 △ARS전화(060-700-1212/통화당 2000원) △문자기부(#9004/문자당 2000원) △홈페이지(www.chest.or.kr) △신용카드 포인트 기부 △기부상담 나눔콜센터(080-890-1212) 등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 <수암 (守岩) 문윤홍·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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