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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 매일 태양과 달이 뜨다
2015.04.06 | 정진해 문화재 전문기자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산70번지에 자리하고 있는 통일신라 말에 창건되어 조선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법천사는 고려 시대에 융성했던 남한강 변의 사찰 중 한 곳이다. 아직 발굴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넓은 절터에는 세월만큼이나 조금씩 드러내 보이는 유적은 그 끝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문화재명 :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국보 제59호) 원주 법천사지 당간지주(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0호) 소 재 지 :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산70번지
고려 시대의 양대 종단인 화엄종과 법상종 중 법상종 사찰로 번성했던 이곳엔 국사였던 지광국사 해린이 왕실의 비호하에 법천사(法泉寺)로 크게 융성했던 곳이다.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동문선』 등에서 전하는 자료와 2001년부터 시작하여 시·발굴조사를 거듭하면서 통일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기의 건물지 19동과 우물지 3개소, 석축 및 담장 유구, 계단지, 금동불입상, 연화대석, 기와, 자기류 등의 유물이 확인되었고 아직도 얼마나 많은 유물이 모습을 드러낼지 마지막 그날까지 기다려볼 뿐이다.
▲ ㆍ수미산·용화수·천인상·봉황·해·달·구름·당초문으로 이루어진 도솔천 지광국사탑비(국보 제59호) ㆍ비몸에 새겨진 당초문과 봉황문 ㆍ태양의 상징인 삼족오문 ㆍ달의 상징 토끼문 © 정진해 |
| 지광국사(智光國師, 984∼1067)는 원주 출신이며, 해린(海麟)은 법호이다. 해린은 유식학을 공부하고 1001년 숭교사를 개창하였고 후에 법상종의 교단을 이끄는 단초를 마련하였다.
성종에서 문종에 이르는 다섯 왕을 거치며 대덕·대사·중대사·승통(1045년)의 법계를, 강진홍도·명료돈오 등 10개의 법호를 받았다. 문종은 해린 스님을 개성 봉은사로 찾아와 왕사(1056년)와 국사(1058년)로 추대하면서 "스님은 아무렇게나 말을 하여도 곧 도도하고 훌륭한 문장을 이루었으니, 혜거의 문장력도 혼비백산하였고, 문장을 나누면 척척 음운에 맞았으니 담빙의 음운학 실력도 부끄러워할 정도였다. 그뿐만 아니라 서화·문장·필법에 정통하고 민첩함을 누가 능히 대적할 수 있겠는가?" 하는 찬탄이 거듭된다. 국사의 나이 84세(1067년). 당신의 명이 다했음을 안 지광국사는 처음 출가했던 법천사로 돌아와 머물다가 그해 10월 23일 열반에 든다. 문종은 시호를 지광(智光), 탑호를 현묘(玄妙)라 내렸다.
절터 동쪽 아늑한 곳에 자리 잡은 지광국사탑비(국보 제59호)는 옛 모습에서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간직하고 있는 최고의 걸작이라 하겠다. 촘촘히 들어선 건물지와 우물터가 남아 있는 가장 위쪽에 왕관을 쓰고 있는 듯 한 모습으로 혼이 담긴 탑을 기다리며 서쪽을 향해 서 있다.
지광국사가 불교에 입문해서 목숨을 다할 때까지의 행장과 공적을 추모하는 글이 새겨져 있는 탑비의 귀부는 넓은 지대석 위에 놓였고 밑에는 구름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용두화된 거북머리의 목은 길게 곧추서서 정면을 향하고 목에는 물고기 비늘을 표현했다. 등에는 네모 구획 안에 따로 귀갑문을 새겼으며 다시 그 안에 ‘왕(王)’자를 양각했다. 등의 중앙에는 간결한 복련의 비좌를 마련하여 비신을 세웠다.
비신 상부에는 당초문과 봉황, 수미산, 구름, 비천상, 삼족오, 용화수, 토끼 등의 문양이 매우 이채로우며 비신의 바깥 둘레에 보상당초문을 조각하여 돌린 것이 특징이다.
특히 중앙에 자리한 용화수에는 주렁주렁 수정이 매달려 있고, 우측에는 용화수와 토끼를 달로 표현하였고, 왼쪽에는 삼족오를 태양으로 표현하였다. 측면에 새겨진 화려한 구름조각과 어우러진 두 마리의 용이 정교하고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릿돌은 네 귀가 바짝 들려진 채로 귀꽃을 달고 있는데, 그 중심에 3단으로 이루어진 연꽃무늬 조각을 얹어 놓아 꾸밈을 더하고 있다. 3단으로 올린 기단석 사방에는 선으로 그려진 문양이 있어 전체적인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우주와 자연에 대한 생각과 종교적 원망이 담겨 있음을 느껴진다. 아쉽게도 비신의 아랫부분은 점점 자연의 풍화로 조금씩 마모되어 가고 있으며, 상층의 기단부는 조금씩 안으로 그 모양이 변형되어 가고 있다. 더 이상 마모와 변형이 가지 않도록 조사와 복원이 병행되어야 할 것 같다. 비문은 고려 중기의 문신인 정유산이 짓고, 글씨는 고려 선종 때의 서예가인 안민후가 중국의 구양순체를 기본으로 삼아 부드러운 필체로 썼다.
▲ ㆍ비천상사진 ㆍ원주 법천사지 당간지주(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0호) ㆍ 일제의 만행과 6.25 전쟁 당시 폭격에 1천여 조각으로 부서진 지광국사탑, 더 이상 옮겨갈 수 없는 안타까운 비운의 역사 ㆍ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 © 정진해 |
|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은 원래 이곳 법천사지에 비와 함께 있었으나 일제에 의해 오사카로 빼돌렸다가 반환되면서 현재 국립고궁박물 옆 뜰에 주저앉고 말았다. 밀반출되고 반환되는 과정과 6.25동난 때 포탄의 피해를 받아 많이 훼손되어 더 이상 옮길 수 없어 현재 그 위치에 외롭게 서 있다.
당간지주(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0호)는 탑비에서 약 300m 거리의 농가 창고 옆에 있다.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깃발을 다는 당간을 지탱하는 돌기둥이다. 별다른 조식이 없으며, 간대가 마련되어 있다. 특히 두 기둥 중간 부분에는 간공이 없으며, 윗부분의 안쪽에는 당간 고정하기 위한 홈을 파 놓은 것으로 보아서 높은 당간을 사용하지 않았음을 짐작된다.
이곳에는 번창하고 사라진 역사를 증명하듯 산 증인이 있다. 한 그루의 고목 느티나무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음에도 아직 목숨을 연명하고, 사계절 하루도 어김없이 역사의 흔적을 쌓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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